큰누나의 동생 돌봄
이 편지는 누나에게 처음으로 띄웁니다.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불러왔지만, 글로는 이제야 꺼냅니다. 저에게 누나는 누나 이전에 엄마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누나는 결혼해 집을 떠났습니다. 이십 리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살았기에, 저는 가장 많이 누나에게 기대며 자랐습니다. 엄마의 나이가 많아 학교에 오시는 것이 싫던 날들, 누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자리와 누나의 자리를 함께 맡아주었습니다. 집에 올 때마다 동생들 용돈을 챙기고 반찬을 해 오던 손길은, 말없이 이어진 돌봄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봄, 저는 담임선생님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반장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반 편성 성적이 1등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절할 수 없었고, 그렇게 반장을 맡았습니다. 그 시절 자율학습 시간은 저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반장이란 이름으로 예순 명이 넘는 친구들을 통제해야 했던 폭력적인 교실, A반 반장이 회초리를 들 때 저는 끝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소풍 철이 다가오자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반장과 부반장은 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소풍 사흘 전 회의에서 제 몫의 도시락이 정해졌고,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연로한 엄마가 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하실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엄마는 말없이, 결혼해 읍내에 살던 누나에게 그 부탁을 하셨을 것입니다.
누나, 기억하십니까. 그때 누나는 집으로 와서 선생님을 위한 봄 소풍 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찰밥과 김밥, 나물과 생선구이, 소고기와 해산물까지, 제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정성의 도시락이었습니다. 반찬 솜씨 좋은 누나의 도시락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끝내 그 도시락을 직접 전하지 못하고 부반장을 시켜 전달했습니다. “누나가 싸준 도시락입니다.”라고 말하면 되었을 텐데, 그 한마디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지만, 그날의 저는 참 많이 작고 슬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3월 1일 자, 전남 나로도 봉래종고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양복을 맞춰준 사람도 누나였습니다. 2월 말, 이불을 싸 들고 누나와 함께 철부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던 풍경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2년 뒤 부부 교사가 되었을 때, 누나가 빌려준 전세금을 갚기 위해 재형저축을 들고 꼬박 1년을 버텼던 시간도 떠오릅니다. 하나하나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저는 누나에게 무엇을 돌려드렸을까요. 명절에 보낸 과일과 옷 몇 벌 사주고, 용돈 조금 드린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은 아직도 많습니다.
이제 수원에 살게 되며 물리적 거리마저 멀어졌습니다. 칠순을 넘긴 누나는 동생들에게 여전히 마음의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떠난 뒤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줄었지만, 고향처럼 찾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저를 안심시킵니다.
나이 차가 커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적은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누나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서울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부모님 살림을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살림을 보태고, 동생들 용돈을 챙겼습니다. 그런 누나의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 제 인생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누나로 태어났다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 솔직히 인정합니다. 누나는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당당해도 될 만큼 충분히 잘 살아왔습니다.
가끔은 생각합니다. 어쩌면 전생에서 저는 누나의 아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한 온기를 누나가 대신 건네주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을 결혼시키고 아내와 둘만 남은 지금, 누나의 마음이 더 깊이 이해됩니다. 그래서 더 절실해졌습니다. 경상도 남자라는 핑계로 사랑과 감사를 아껴온 시간을 내려놓고, 이제는 더 자주 연락하고 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곧 남해에 가면 독일마을에서 스테이크와 피자를 먹고, 맥주 한잔 하며 웃는 시간을 꼭 갖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함께해 준 자형께도 이 마음을 전합니다.
“동생, 미안하다.” 누나의 말에,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누나,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나의 두 번째 엄마였던 누나,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