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작은누나를 그리며
누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의 저보다 더 젊은 나이로 떠났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은 점점 엷어집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불쑥 떠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누나와 저는 열 살이 훌쩍 넘는 나이 차이가 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누나는 공장으로 돈을 벌러 떠났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함께한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명절에나 잠깐 얼굴을 비추었다가 이내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누나의 살림이 넉넉해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유방암이 재발해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삶이 저는 아직도 안타깝습니다. 저와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고, 두 딸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 이승에서 미처 누리지 못한 시간을 평안히 보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누나, 그곳에서는 행복하십니까.
살갑지 못했던 동생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함께 보냈더라면, 조금만 더 자주 찾아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누나는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아파트를 장만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아끼고 또 아껴 마침내 이루었지만, 오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지요. 그 순간, 누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뒤로 미루었는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자신을 낮추며 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마 누나는 말하겠지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라고.
정말 그럴까요.
집을 마련하면, 자식이 자라면, 그다음에는 조금은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요.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세우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삶의 정답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가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를 지우는 삶이 과연 옳은가 하고 묻고 싶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저는 이제 걷고 있습니다.
누나, 이제는 그곳에서 누나의 속도로 천천히 걸으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누구를 위해 애쓰지 말고, 그저 누나 자신을 위한 여행을 하십시오. 저는 자발적으로 교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두 아들은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고, 지금은 아내와 둘만 남았습니다. 조용히 하루를 보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유를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저는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여기서는 듣지 못했던 속마음, 혼자 삼켰던 눈물, 이루지 못한 꿈들을 천천히 들려주십시오. 저도 누나가 떠난 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놓았는지 차분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작은누나, 꿈속에라도 한 번 찾아와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남겨주십시오.
누나의 동생으로 태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연을 나눌 수 있어 저는 행복했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을 함께해서 더 오래 그리운 사람,
우리 누나.
꼭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