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회하는 몽마의 그림자
※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창조된 픽션입니다.
1991 오스트리아 린츠
율리나는 자주 지각했지만 항상 이유가 있었다. 실수했을 때를 제외하고 동료 직원들은 친절했지만, 왠지 자리를 비우면 자신에 대해 쑥덕거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오늘은 리크 손질하는 법을 배웠다. 리크는 겹겹이 흙이 껴있기 때문에 가운데를 길게 갈라 결들을 벌려서 흐르는 물에 씻어줘야 한다. 10kg의 리크를 씻고 얇게 썰어놔야 했다. 리크의 섬유질은 질겨서 썰기도 힘이 들고 썰다 보니 눈이 매웠다. 하기 싫다 생각하던 차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율리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또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을 직원들이 있는 주방으로 돌아가 어색한 적막을 견디며 질긴 리크를 썰기가 싫었다. 율리나는 볼일을 최대한 천천히 보고 거울로 얼굴을 좀 살펴보다가 다리를 절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으-.”
끙끙거리며 울상으로 돌아오자 주방장의 크고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을 쓰면서 더 동그래졌다.
“무슨 일이야?”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 허벅지가 너무 아파요. 어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걱정하는 얼굴들을 뒤에 두고 율리나는 다리를 절며 집에 갔다. 어려서부터 알고지낸 사려 깊은 주치의 베어만 씨의 병원을 방문해 2주짜리 병가를 받았다.
2주가 끝나갈 때쯤 주방장에게 전화가 왔다. 회복은 잘했느냐, 병가 마치면 복귀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오늘 한번 더 의사에게 가보고 연락을 주겠다, 안부를 물어주어 고맙다며 통화를 마쳤다. 율리나는 다리를 절며 의사에게 가서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정형외과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베어만 씨는 율리나의 증상을 가벼운 외상으로 인한 단순 염좌로 진단했었으나, 2주가 지나도 통증이 있으면 다른 이유일지 모른다며, 2주 연장된 병가증과 정형외과 의사에게 낼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총 4주의 병가를 마치고 출근했다. 8시 4분. 율리나는 아픈 다리를 끌고 이 정도면 늦지 않게 도착했다 생각했다. 주방장이 이제 좀 괜찮냐 묻자, 율리나는 참을만하다 대답했다. 그날의 과제도 리크 손질이었고 절반 정도 손질하던 율리나는 다시 다리의 통증이 도졌다며 집에 갔다.
또 한번의 2주 병가 후 출근 날, 주방장은 면담을 하자했다. 병세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요리사는 항상 서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주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율리나는 신경질이 났다.
‘자르고 싶으면 자른다고 하지.’
하지만 겉으로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오늘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러 왔어요. 다리가 계속 아플 거 같아서요. 사직서는 오늘 우편으로 보낼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율리나는 칼가방을 다시 챙겼다. 다리를 살짝 절뚝이며 식당을 나서 트램 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정류장이 이렇게 멀었나?’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식당의 직원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멈춰서서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뒤통수가 따끔거렸지만 얼굴은 애써 정면을 향했다. 트램이 오길 기다리는 5분 남짓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율리나는 손톱을 뜯으며 트램 시간표를 읽고 또 읽었다. 이미 수십번은 읽었지만 말이다. 트램의 3단짜리 좁은 계단을 오르자 양문형 접이식 문이 무대의 커튼처럼 닫혔다. 그녀는 다시 똑바로 걸어 빈 의자를 찾아 털썩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