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회하는 몽마의 그림자
※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창조된 픽션입니다.
1993 오스트리아 린츠
율리나는 아빠 친구의 소개로 린츠 외곽에 위치한 아마이젠 바이오테크라는 기업의 공장에 취직했다.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했지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했다. 상품의 생산은 사람이 할 게 거의 없었다. 재료를 기계 입구에 처넣으면 알아서 정렬도 하고 제작도 했다. 다 만들어진 상품을 낱개 포장하기 위해 한 개씩 집어 알맞은 홈에 넣는 섬세한 일은 기계가 하지 못했다. 혹은 공장장이 그런 기계를 살만한 예산이 없었던가, 첨단 기계보다 사람 몇 명이 더 쌌던가.
이 공장은 율리나에게 꼭 맞는 직장 같았다. 몇 분 늦어도 그만큼 늦게 퇴근하면 됐다. 유두리가 있는 곳이었다. 율리나는 그 ‘첨단 기계’의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했다. 뭉텅이로 쏟아져 나오는 상품을 한 개씩 집어 홈에 정확하게 넣기만 하면 됐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잘하고 못하는 사람의 구분이랄 것도 없었다. 다만 위생용품 공장이라 들어가기 전에 온몸을 강한 바람으로 터는 에어샤워를 하고 특수한 위생복을 입어야 했다. 아주머니들이 손콘돔이라고 부르는 파란 라텍스 장갑과 손소독은 필수였다.
율리나가 일하는 공장은 꽤 멀었다. 그래서 출근길에는 아버지가 잠을 줄여가며 태워주고, 저녁에는 서비스 시간이라 데릴러가지 못해 그녀 혼자 트램을 타고 집에 가야 했다. 딸이 이번 직장에서는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나름의 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율리나는 몸과 마음이 편해 지금 직장이 마음에 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다칠까 봐 긴장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팀워크가 필요 없었다. 그냥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빠랑 둘이 살기에 수입도 부족하지 않았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일은 퇴근 후의 삶에 활기를 줬지만, 일하는 동안은 거의 죽은 사람을 만들었다. 혹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됐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이 일의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했다.
퇴근길은 꽤 길었다. 40분 정도 트램 1번이나 2번을 타고 가야 했다. 퇴근할 때마다 니벨룽겐다리를 지났다. 왼편에 식당 라르고가 보여 율리나는 항상 오른편 창가에 앉아야 했다. 집에 도착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한창 일할 시간이라, 강아지 알렉스만 낑낑대며 반겨줬다. 알렉스는 닥스훈트 종으로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어 우스꽝스럽지만 귀여웠다. 퇴근 후에는 항상 알렉스와 짧은 산책을 했다. 산책로는 항상 같았다. 사실 작은 마을이라 다른 갈 데가 없었다. 길가의 라벤더와 쑥부쟁이 같은 들꽃들을 따다 정원용 철사로 엮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녀의 거실 꽃병에는 항상 꽃다발이 있었다.
“돈 주고 꽃을 사는 건 바보짓이야. 이렇게 예쁜 꽃들이 길거리에 널렸는데. 그렇지, 알렉스?”
방에 들어가면 침대 옆 구석에는 칼가방이 놓여있었다. 프렌치 나이프, 산토쿠 나이프, 보닝 나이프, 톱니로 된 브레드 나이프, 부리모양의 페어링 나이프, 필러, 연마봉, 칼 날에 뚫리지 않게 특수제작 된 칼가방까지 합치면 교육생용이더라도 족히 400유로는 넘었다. 프렌치 나이프를 뽑아 날에 수직 방향으로 손 끝을 긁어봤다. 아직 날이 서있었다.
‘그래. 다 쓸 일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