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무에 근육과 관절이 없어 다행이다
백 년도 더 산 나무에게 나는 앞을 서성이는 하찮은 바람
육중한 몸, 거칠게 갈라진 비늘
어릴 적 자주 찼다 겁도 없이
새들이 나를 무서워해서 다행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부리부리한 눈
괜스레 발을 구르며 전능자 흉내를 낸다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역사 벽에 오줌 갈기며 고함치는 저 주정뱅이
가슴 가득 채운 화약을 술병에 담을 줄 몰라 다행이다
방법을 알았다면 세계지도자가 됐을 텐데
공 위에 서는 것은 위태로운 일
부주의한 입김
무심한 발걸음
손의 떨림
심장의 떨림
위협이 많은 만큼 보호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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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둥근 것 위에 서는 것은 위태로운 일
"지구는 둥그니까..."
차라리 평평했다면 편했을까
조심할 일이 줄었을까
둥근 것에 건 희망은 둥근 것의 불안을 몰라 순진했다
예나 지금이나 둥근 지구를 믿기 어려울만하다
공 위에 산다는 사실이 신경증을 유발하는지도
언제 넘어질지 몰라 모서리를 만드나 보다
신이 만든 것들은 모두 둥글었고
강자들은 부수어 깎은 것 위에 섰다 평온히
빈자와 귀빈의 차이는 화약고의 위치
누구는 속이 터지고
누구는 밖이
누구는 자기를 부수고
누구는 남을
각진 데 누워
각진 데 쓰면서
둥근 것이 그립다는 그 사람
참 가엽고도 가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