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내 속도에 맞춰서
가래떡 뻥튀기를 닮은 목련 꽃이 하나 둘 떨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곧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2학년 맞이 체력측정을 한다고 아침부터 교실 안이 복작거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겨우 앉히고 오늘 일정을 설명했다.
"오전에는 실내에서 유연성 테스트를 하고, 오후에는 밖으로 나가 100M 달리기를 할 거예요."
요즘에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 때는, 각 반 회장들이 교실 뒤에 있는 수레를 끌고 계단 앞으로 가면 체육 선생님이 테스트기를 하나씩 실어주셨다. 그동안 우리는 번호순으로 쭉 줄을 서면 된다.
우리들 의자 중 하나를 끌고 와 앉은 선생님이 말했다.
"뒷 번호 친구 두 명은 앞으로 나와 움직이지 않게 무릎 잡아주고, 팔을 끝까지 뻗어야 해요."
양손에 흥건하게 땀이 났다. 내 무릎은 누가 함부로 잡으면 안 되는데.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려 했던 어린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유독 힘들었던 순간은 '평범해 보이고 싶을 때'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적당히 친한 친구들 앞에서, 좋아했던 남자애 앞에서 특히 그랬다. 잠깐 참으면 지나갈 순간에도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졸업 전까지 매년 했던 체력측정이지만, 무릎 대신 종아리를 잡아달라는 말도 5학년이 돼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남들 모르게 오금 사이에 공간을 두고 힘을 줘 버텼다. 무릎이 돌아가려 하는 걸 애써 막느라 온몸이 부들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난 내 무릎만 지키면 됐으니까.
점심시간이 끝나자 모두 가벼운 겉옷을 챙겨 운동장으로 모였다. 하얀 분필 가루로 가득 찬 라인기가 반듯한 줄을 긋고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섞여 열심히 신발끈을 고쳐메며 생각했다.
'옆 사람 신경 안 쓰고 느리면 느린 대로 그렇게 달리면 돼.'
선생님의 만류에도 괜찮을 것 같아 고집스럽게 출발선에 섰다.
준비하시고, 땅!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놀랍게도 첫 발을 떼자마자 넘어졌다.
오른쪽 무릎이 완전히 돌아가버린 탓이다.
출발선 바로 앞, 50cm도 못 가 넘어지다니.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은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창피했나 보다.
운동장에서 쓰러진 나를 반 아이들이 에워쌌다. 그때 누군가 품 안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부축했다. 다음 순번이라 뒤에서 대기하던 서연이라는 친구였다.
텁텁한 모래가 바람을 타고 따갑게 불어온다. 그 탓에 내가 처음 친구에게 도움 받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일 년 전 점심시간이었나. 그날의 급식 메뉴도 대충 기억이 난다. 생선가스에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이었다. 별로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푸짐하게 담았다. 그날은 늦게까지 학원이 있어 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게 뻔했다. 그런데 자리로 걸어오다 그만, 미끄러운 바닥을 밟고 휘청이면서 식판을 엎었다. 당연히 국은 흘러넘쳤고 반찬은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다행히 삐끗을 하진 않았지만 안 넘어지려고 버티던 다리에 힘을 너무 줘서 무릎이 얼얼했다. 어지럽지만 않다 뿐이지 평소 삐끗했을 때만큼이나 아팠다.
그보다 견디기 민망했던 건 나를 향한 시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실수에 그만 얼어붙었다. 두 볼이 벌게지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줄 몰랐다.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내 양쪽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혀줬다. 확인해 보니 옆 동에 사는 같은 반 남자애였다.
당시 뒷정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다시 채워진 따뜻한 밥상뿐. 그 애는 자기 밥을 먹다가 말고 급식 아주머니한테로 가 내 밥을 새로 받아왔다. 그리고선 괜찮냐고 물었다. 꼭 필요한 순간에 받은, 다정한 친절이었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실수해서 놀라서 뛰는 거야. 지금 너무 긴장한 거야.'
온몸에서 심장이 뛸 수 있다는 걸 그 순간 처음 알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고개만 냅다 끄덕이고는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게 처음이었다.
그 남자애는 이르게 찾아온 내 첫사랑이다.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좋아한다는 말도 아까울 만큼 좋아했으니 첫사랑이라 정의할만하다.
이후로 걔를 얼마나 힐끔힐끔 쳐다봤는지, 차라리 가자미 눈이었으면 편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운 좋게 짝이라도 된 날엔 40분의 수업이 4분처럼 짧게 느껴졌다. 등하교도 일부러 그 애가 나올 것 같은 시간에 맞춰했다. 잠깐이라도 내가 모르는 순간의 그 애가 궁금했다. 말 한마디 편하게 못 건네볼 거면서.
수줍은 성격 때문에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그 애를 만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얘기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
서연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보건실로 갈까?"
역시 또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 바람을 타고 사방팔방 흩어지던 모래알들이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았다. 나는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래, 고마워."
잊고 있던 기억까지 끄집어내 준 그 사건 이후로 달리기랑은 빠르게 멀어졌다. 급출발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확실히 배웠다. 몸이 긴장 상태일 때는 다음 행동으로 이어가기 전에 잠시 호흡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이젠 고맙다는 한 마디가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도 잘 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달릴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아니다. 달리기 운동이 그렇게 무릎에 좋다는데 어쩌겠나. 안 되는 것을.
만약 다리가 건강했다면 내 꿈은 운동선수였을 거다. 남들은 다 싫다고 하는 단체생활도 좋아하고 몸을 쓰고 도전하는 일에 흥미가 있으니까.
동네에서 친구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 손 놓고 구경만 했던 것도 후회가 된다. 그거라도 배워뒀으면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달리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네발 자전거까지는 탔었지만 두 발로 바꾸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다칠 것 같아 그만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네발 자전거는 나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너 아직도 두 발 안 뗐어?"하고 묻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어때서? 좀 더 당당하게 탈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때는 그렇게까지 타고 싶은 존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쯤 됐을 때 학교에서 사생대회로 교외 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집합 장소까지 알아서 모이면 되는 거였는데 그 공원은 자전거 대여점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이동 수단에도 딱히 제한이 없어서 당시 친했던 친구들 사이에선 같이 타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난 그 의견에 홀로 찬물을 끼얹어야 했다. 당연히 눈치도 보이고 마음도 편하지 않았지만 나의 사정을 이해해 줄 친구들이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생각한 것보다 거리가 있었다. 아침부터 한참을 걸은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걷는 와중에 누군가 작게 내쉰 한숨은 내 귀로 흘러들어와 마음 깊숙한 곳을 아프게 찔러댔다. 최선이었을까? 돌아간다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텐데.
당시엔 모르는 척, 상처받지 않은 척하고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몇 초 안 남은 신호등을 건너지 못할 때나 눈앞에 보이는 버스를 그냥 보내주어야 할 때.
유독 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마음으로는 벌써 갔지.'와 비슷한 말을 자주 하는 이유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속상해서다.
이런 순간들이 삶을 답답하게 조여 오지만, 난 그럴 때마다 돈 안 주고 여유를 샀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빨리빨리 하다 보면 뒤돌아볼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항상 주의를 살피며 걷는 나는 남들보다 훨씬 더 깊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길가에 꽃들이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오늘 하늘엔 어떤 모양의 구름이 흐르는지. 전부 나만 보고 나만 느낄 수 있다. 내 옆엔 언제나 기다림이 함께니까.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엔 최소 30분의 여유를 잡고 출발한다. 나의 여유는 공짜지만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니 일찍 도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다. 덕분에 지각 한번 안 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났다.
하루 일정을 너무 빽빽하게 채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무리해서 살기에는 모험심이 모자라다. 하루를 이틀처럼 사는 '갓생' 대신에 하루를 온전히 즐기는 쪽을 택했다. 목표가 높지 않으면 여유롭게 살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나에게 맞추는 것.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피지 못할 꽃은 아니니까. 천천히 피고 느리게 지는 꽃일 수도 있으니까. 조급해하지 않을 거다.
발맞춰 걷는 걸음이 끝내 원하는 곳에 가 닿기를...
혹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면
그냥,
너의 속마음을 가만히 들어줘.
그리고 이렇게 물어봐.
"너의 하루는 너에게 맞는 속도로 흐르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