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약점으로 보일지 몰라도 난 괜찮아
비바람을 피해 담장 아래 뿌리내린 작은 들꽃처럼 나도 아픔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첫 등교의 설렘 덕분에 등에 맨 가방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유치원 졸업식 때 선생님 목에 매달려 펑펑 울던 아이는 어느새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앞을 단단히 가로막은 건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무릎이었다. 까마득한 8살 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던 3월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이름 모를 남자애가 소란스럽게 뛰어와 내 어깨를 치고 갔다.
체구가 작았던 나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는데 뭔가 이상했다.
'눈앞이 왜 이렇게 어지럽지?'
그 순간, 무릎에서 말 못 할 고통이 일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삐끗이다.
짧은 인생 통틀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막 걷기 시작한 3~4살쯤에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러 간 공원에서 여러 번 넘어졌다고 한다. 다만 내가 울지 않고 아프다는 표현도 하지 않아서 몰랐었다고.
여기서 삐끗은 무릎이 실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나는 양쪽이 다 불편한 케이스라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크고 두꺼운 뼈가 어떻게 움직여?'
처음 듣는 사람은 당연히 의문스럽겠지만, 누군가의 몸에선 매일같이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무릎뼈를 손가락으로 잡고 밀면 신기하게도 밀렸다. 양쪽 끝으로 보냈다가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오는 게 가능했다.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 알면서도 그 느낌이 신기해 이따금씩 만지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앉아서 만질 땐 괜찮은데 걷거나 뛰는 와중에 체중이 실리면서 삐끗을 하면 무지하게 아팠다. 균형이 깨지니 반드시 넘어지게 되고 무릎이 돌아간 충격으로 한동안 통증이 심하기에 실신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런 내 무릎은 아빠 쪽 유전이다.
할머니 어렸을 적에 친했던 친구가 장난을 친다고 도랑으로 밀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원래도 안 좋았던 무릎이 그때 더 어긋나면서 아빠와 나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준 모양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살면서 약한 무릎을 원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아니다. 자다가도 속상해 눈물이 나곤 한다.
아빠는 운동을 매우 좋아했던 활발한 소년이었다. 어렸을 때는 태권도를 잘해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운동으로도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린 몸이었다.
아빠가 남들만큼이라도 건강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나도 나의 아픔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무릎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다. 되도록이면 나의 선에서 이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를 끊어내리라.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엄마 쪽을 닮지 않은 것이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젊었을 당시 키가 180이 넘으셨다. 그 시대에는 흔치 않았던 신체 조건이다. 심지어 장사 출신이셔서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엄마는 아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늘 근육량이 평균 나이대보다 높았다. 힘이 센 것도 마찬가지라 고등학생 때 운동선수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도 외할아버지를 닮았더라면 모든 걸음이 지금보다는 덜 불안하지 않았을까.
내가 깬 건 담임선생님의 넓은 등 뒤에서였다.
1층에 있는 보건실까지 여러 개의 계단을 뛰어내려 가는 동안 생긴 반동 덕에 정신이 들었다.
통통 통통.
심장 박동을 닮은 그 진동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대기석에 턱 하니 내려놓으셨다. 다소 거친 손길이었지만 선생님의 다급한 마음이 잘 느껴져 오히려 감사한 순간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금방 괜찮아졌다. 사실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이미 끝난 일이었다.
고통의 시간은 지나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멀쩡하게 일어설 수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불규칙하고 아픔의 강도가 세다는 게 문제였지만. 한 번 삐끗할 때마다 조금씩 마모되는 인대와 연골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걱정이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삐끗하는 일이 잦아졌다.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왔다. 작은 두 발로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일찍 어른스러워졌다고 느낀다.
몸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보다 마음을 달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불쑥 '나는 왜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쳤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고.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만큼 너 약하지 않다고.
혼자 약속한 것이 하나 있다면, 절대 건강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자는 거였다. 약한 무릎을 약점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약점이 될까 봐 무서워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며 바드럽다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빠듯하게 위태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내 무릎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다. 몸에 못 믿는 구석 하나 달고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자꾸 매정한 사람이 된다. 휘갈겨 쓴 글씨가 꼴 보기 싫어 공책을 북북 찢어 버리는 것처럼 하고 싶은데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그 생각을 박박 지워내게 된다.
남들과 달랐기에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을 많이 겪으며 살았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나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앞으로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
이 글은 바드러운 나의 무릎에게 주는 늦은 위로이자 당신에게 건네는 이른 응원이다. 늦어도 좋으니 지금보다 행복한 내일을 반드시 맞이하기를. 당신의 인생 한가운데에 늘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