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를 쓰자고 다짐했다.
쓰는 동안엔 위로가 되고, 나중에 펼쳐보면 힘이 될 것 같아서.
저번 달부터 '달의 일기'라는 어플이 내 휴대폰 바탕화면에 깔려있다. 학생 때부터 즐겨 쓰던 어플인데 데이터 한 번 날려먹고 오랜만에 다시 접속했다.
이 어플의 장점은 글자 수 제한이 없다는 것, 감성적인 배경음악이 나온다는 것, 하루에 여러 편 쓸 수 있다는 것, 달의 모양으로 기분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꾸준히 쓰면 예쁜 테마를 공짜로 준다는 것,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메인 화면의 달이 점점 차오른다는 것, 모아둔 일기를 한눈에 찾아보기 쉽다는 것이다.
혼자 보는 일기지만, 다듬어진 문장으로 나의 현재를 기록하고 싶었다. 소설의 한 부분처럼 누구한테나 잘 읽히는 실의를 표현해내고 싶었다.
오늘 일어나서 뭘 했고, 뭘 먹었고, 뭘 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생각을 했고, 뭘 느꼈고, 뭘 바꿨는지가 살아가며 더 중요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내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어떻게든 나아가게 만든다. 엉망인 모습일지라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정말 힘들 땐 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현재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결국 달의 일기는 '죽을 만큼 힘든 건 아닌데 버티기는 어려웠던 날'들의 기록으로 차근히 채워졌다.
> 어느 일요일 ..
애쓰는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난 어떤 생각을 할까.
안심하며 웃을 수도, 힘들었다며 눈물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잡한 감정마저 흘려보내며 평범하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얼마나 애타게 그렸던 평온인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라도 내가 편안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생각만으로도 조금 억울하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찾아온 행복 같은 거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발밑이 온통 진창인 이곳에서 내가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난,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어느 월요일 ..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빛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빛을 잃은 걸까.
다른 이들도 알아볼 정도라면 자신이 빛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해 나가는 걸까.
희망일까, 아니면 지독한 체관일까.
난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걸까.
'빛이 될 수 없다면 빛이 나는 쪽으로 걸으라고,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네 안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살아있을 거라고.'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걸 집어삼킬 듯 강한 어둠 속에서도 네 마음만 무사할 수 있다면, 그게 반짝이는 상태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이젠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한순간 흔들림도 없이.
겨울의 시작을 보내며 내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간사한지 제대로 배웠다.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뭐 그런 걸로 혼자 굴을 파고 있어? 별 거 아닌데 그냥 일어나.'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일이 되니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목이 안 좋아서인지, 깊게 자리한 우울 때문인지 몰라도 11월 마지막주부터 지금까지 긴장성 두통에 시달려 힘든 하루를 보냈다.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눕는 것조차 편하지 않으니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후회했다. 스스로 몸을 망친 것 같은 생각에 지금보다 괜찮았던 순간을 그리워하며 일주일 전, 한 달 전, 일 년 전을 회상했다. 분명 그때도 그때만의 문제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미리 알고 바로잡았더라면 최악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가정에 자책만 늘어갔다.
지금도 이 고통이 영원할까 봐,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을까 봐 무섭다. 그 조급함이 오히려 날 불안하게 만든다.
근 몇 년간, 자유로웠던 적도 얼마 없지만, 전처럼 평화로운 감정은 다시는 못 느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단단한 착각에 빠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일상이 고작 아픔에 좌절하는 것인가? 그건 아닌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걱정한다고 해서 사라질 고통이 아니라면 그냥 이걸 무시하면서 나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어차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라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쪽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고.
등 돌리면 까먹는 게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두 번 정도 똑같이 좌절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보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흔한 명언을 보란 듯이 써 붙이고는 한 자 한 자 힘을 내 적어가고 있다.
겪어보니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게 가장 위험한 것 같다. 마음이 잿빛이니 세상 어떤 것도 예뻐 보이지 않고 자존감만 떨어졌다.
손 잡아주는 가족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주제에 어떤 조언을 하겠냐마는 힘들 때 지금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무엇도 영원한 건 없다.
좋아질 거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