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힘

by 물오름달

자기 전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3개월 무료쿠폰이 있을 땐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끝난다고 하니 괜히 아쉬운 거다.

어쩔 수 없이 결재를 했고 돈이 아까워 20대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책을 골라 재생했다.


'말과 배경음뿐인 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잡생각이 많이 끼어들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빠져들었다. 오히려 앉아서 읽을 때보다 메시지 파악이 쉬웠고 재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전하고, 글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두 모셨던 돌잔치 날. 어른들의 기대를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며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초중고 학창 시절 내내 마이크를 잡고 다닌 까닭이.


아쉽게도 노래를 불렀다거나 연기를 했다거나 하는 대단한 업적은 아니지만, 교내에 다섯 명뿐이던 방송부에 세 번 다 합격했으니 나름 괜찮은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시험을 보는 동안 누구보다 간절했고, 그 과정도 파란만장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풀어보겠다.


방송부원이 되고 나서는 '말'할 기회가 많아졌다. 중학생 때와 고등학생 땐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보직을 맡았다.

대본이 정해져 있던 등교 방송과 분리수거 안내 방송, 각종 행사 진행 같은 경우엔 실수하지 않을 만큼 줄줄이 외웠었고 대본이 따로 없던 점심시간 방송과, 아침 라디오 방송은 전날에 대본을 써서 확인을 받았다.

얄팍한 글 실력이 좀 늘었다 싶었던 때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매일 다른 정보를 전달했다.

중앙 스피커에 불이 켜지면 손이 덜덜 떨릴 만큼 긴장됐지만 벅찬 설렘도 함께였다. 마이크를 통해 전달된 목소리가 뒤늦게 내 귀로 되돌아오는 것도 좋았다.


피곤을 이기고 출근하는 기분으로 30분 일찍 등교할 때도, 행사가 줄줄이 잡혀 몇 시간 늦게 하교할 때도, 선생님의 부탁으로 주말에 불려 갔을 때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본 기억이 없다.

공부에 치여 살면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취미였고, 좋아서 했던 일인 만큼 고될수록 더 즐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수능 방송이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 여자고등학교였는데 특이하게 수능 방송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당시 아나운서였던 2학년 선배 한 명과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둘이서 하루 종일 고생하며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본은 수능 하루 전날 나왔다. 그전까진 선배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들었고, 유튜브로 수능 방송을 검색해 흘러나오는 말을 따라 하며 연습했다. 대본을 받고 나서는 각자 몇 교시를 맡을지 상의했다. 경험 있는 선배가 가장 부담스러운 첫 교시와 멘트가 많은 4교시를 담당하기로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동이 틀 때 집을 나섰다. 그땐 수능 한파가 살아있을 때라 한 겨울만큼이나 추웠던 기억이 난다. 걸어가기엔 멀고, 버스는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날 수험생으로 착각해 힘이 될만한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수능 보는 거지요? 잘 될 겁니다. 준비한 만큼 잘 볼 거예요."


정정했어야 했는데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닙니다. 저는 후배예요. 지금은 수능 방송을 하러 갑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서로 뻘쭘 해지고 말 테니. 어쩔 줄 몰라 그저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분명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교문엔 이미 인사를 나누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꽤 있었다. 그 장면이 왜 예뻐 보였는지 모르겠다. 겨울의 찬 공기가 뿌연 입김을 만드는 것처럼 온 세상이 투명하고 반짝여 보였다.


그 사이를 긴장된 표정으로 지나쳐 4층에 위치한 방송실로 올라갔다. 미리 와 있던 선배와 담당 선생님이 반겨주었다.


대기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처음엔 수다도 떨어보았지만 실수할까 봐 긴장된 탓에 기계적인 답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방송 경험은 누구보다 많았지만 수능 방송은 처음이었다. 11월만 되면 뉴스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소재의 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전날부터 발음이 안 되던 '감독관께서는 예비령이 울리면'이라는 말만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복도가 시끌시끌해지더니 한 순간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입실 마감 15분 전이었다.


담당 선생님은 소지품을 걷어가면서 아나운서들을 한데 모아 긴장을 덜어주셨다. 아니, 더해주셨다.


"실수해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거야."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실수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게 짓눌렸다. 꼭 담이 올 것 같았다.


감독관 입실부터 시험지 배부, 종료 시간 알림, 마무리 멘트, 각종 주의사항까지 생각보다 읽어야 할 분량이 많았다. 긴장 속에 1교시를 그냥 흘려보냈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소음이 섞여 들어갈까 봐 스튜디오 밖, 장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따로 방송을 진행했다. 선생님이 손으로 타이밍을 알려주시면 손에 쥔 대본을 틀리지 않고 읽으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긴장 속에서 첫마디를 뗐고, 머릿속에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잘 교육된 AI처럼 정형화된 말투로 글을 쭉쭉 읽어 내려갔다. 헷갈릴까 봐 펜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짚어가며 읽었다.


문제는 각 문장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멘트가 밀려 종소리와 겹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 어떤 문장은 10초 안에, 또 어떤 문장은 15초 안에 읽어내야 했다.


눈앞에 스톱워치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물 500ml를 다 비우고 앉았는데도 목이 탔다. 속도와 발음 모두 신경 써야 했다. 틀려도 고칠 수 없고, 도중에 멈출 수도 없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본 한 바닥이 다 지나가 있었다. 선생님은 가만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지금 좋다는 신호를 보내주셨다.

혼돈의 시간이 전부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건, 몇 분의 시간 동안 내가 숨 한 번 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노래방에서 고음을 빽빽 질러가며 폐활량을 기른 게 이렇게 쓰이는 건가? 싶었지만 마이크가 숨소리 없이 말소리만 깔끔하게 잡아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우는 소리 하더니 엄청 잘하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평소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진심으로 칭찬해 주셨을 때 벅찬 감동을 느꼈다. 운이 좋았던 건지 한 번도 버벅거리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감추느라 바빴지만,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점심은 수능 감독 선생님들과 함께 식당에 내려가 먹었다. 수능 날엔 다들 도시락을 싸 가니까 어떤 밥이 나오나 궁금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직접 가서 보자니 생각보다 평범했다. 평소 먹던 급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따뜻한 국에 나물 위주의 반찬, 그리고 흰쌀밥이 다였던 것 같다.


국은 간이 세지 않은 (깔끔하게 매콤한) 뭇국이었고, 햄이나 고기 같은 기름진 반찬은 없었다.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계란말이가 진짜 통통하고 맛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밥과 반찬은 뷔페식이라 원하면 더 가져다 먹을 수도 있었다.


날이 날인지라 매일 내려오던 급식실인데도 쓸쓸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밥을 먹는 동안, 급식실에는 어떠한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독관 선생님들의 작은 한숨 소리나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질 뿐이었다. 내 목에는 '수능 봉사자'라고 적힌 이름표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여기에 어떤 권리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 앉은 선생님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간간이 안부를 물어주셨다. '밥은 먹을만하냐.' '힘들지는 않냐.' 하는 걱정 어린 물음이 오고 갔다.


밥을 다 먹고 양치를 하는데 수험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황급히 자리를 비켜주려는데 말로만 듣던 '정답 맞히기 빌런들'이 실존하는 현장을 발견했다.


오늘 수능 보는 학생들이 맞나 싶을 만큼 점심시간은 다분히 소란스러웠다. 한 시간 전의 적막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문 밖에 같은 마음으로 떨고 있는 열일곱이 있으니 힘들 내시라, 위로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시험이 시작되면 화장실 가는 것도 제한됐다. 허락 맡고 움직여야 했는데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방송실 문 바로 앞이 교실이라 더 그랬다. 어떻게 잠시 복도로 나와 걸어가는데, 문득 창 밖의 풍경이 궁금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텅 빈 운동장에 잎이 떨어진 나무들. 누군가의 시작을 담담히 응원하는 것 같은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힘든 순간이 있을 때 종종 그날의 풍경을 떠올린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렇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겠지,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어느새 수능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이 익숙해지니 긴장이 풀려서 남은 시간은 책도 읽고, 가져온 간식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추가로 5교시 방송을 맡았다. 어느새 하늘에 노을이 붉게 들더니 이내 어둑어둑해졌다.


끝까지 잘 마쳤구나 안심했을 때, 두 번이나 말을 버벅거렸다. 다행히 5교시 종료령까지 모두 마친 뒤 마무리 멘트를 할 때 일어난 실수였다. 민망해 얼굴을 붉혔지만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수험생들을 위로하는 멘트를 할 땐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큰거렸다. 그들의 노력을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닌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떨리는 하루를 같이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은 곧 나의 미래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착잡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할 귀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나를 위해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를 샀다. 때를 놓친 저녁밥 대신이었고, 오늘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다.


수험생들과 같이 나가면 너무 혼잡할 것 같아 미리 도망쳐 나왔다. 교문에는 학부모들이 줄지어 서 계셨다. 우리를 수험생으로 착각한 부모님들이 너무 수고했다며 함께 박수를 쳐 주셨고, 몇 분은 내 등을 토닥여주시기도 했다.


혼선을 드린 것 같아 죄송했지만 그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건 처음이라 내 것이 아님에도 기쁘게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마주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연기를 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 같다. 목소리가 주는 힘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아서, 그들을 위한 무대를 멋지게 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 연기도 좋고, 무대 위에서의 연기도 좋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 보이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꿈이 커진 만큼 나도, 그날의 선배들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해 봐야지.


어느덧 일 년이 빠르게 흘러 12월이 돌아왔다. 이번 수능 다들 잘 보셨는지 모르겠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딱 하나다. 뭐든 늦은 건 없고, 안 되는 건 없다. 다 잘 될 거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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