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멀리 돌아가는 길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을 누군가 기억해 준다면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아 있을까.
잘 묶여 있던 신발끈이 왜 하필 병원 가는 날에 풀렸는지 알 수 없었다. 불편하게 마음 한 구석으로 몰아냈던 일을 해결해야 할 때가 왔다. 아빠는 무릎을 굽혀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 주었다.
"이렇게 묶으면 절대 안 풀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가는 걸음마다 아빠가 따라올 것 같아 안심이었다. 내 뒤엔 언제나 아빠가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강한 부성애가 아빠를 아프게도 했었다는 건 미처 몰랐다.
어릴 때 체험학습으로 갔던 아이스링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처음 신어 보는 스케이트화에 마음이 들떴다. 새하얀 눈꽃이 피어오르듯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서툰 솜씨로 신발 끈을 묶고 조심스레 첫발을 내디뎠다. 벽을 잡고 한 발씩 나아가니 생각보다 쉬웠다. 이대로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맞춰 조금씩 중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칼날이 얼음을 스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사그락. 사그락. 마치 아름답게 물든 단풍산 위를 뛰어노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뒤따라오던 친구들보다 다섯 발자국 앞섰을 무렵 갑자기 왼쪽 무릎이 휙 하고 돌아가면서 옆으로 슬라이딩하듯 넘어지고 말았다. 얼음 바닥에 얼굴이 쓸리면서 큰 상처도 생겼다.
스케이트화는 일반 운동화와 다르게 단 차가 높아서 발목까지 꺾이다 보니 평소보다 통증이 훨씬 심했다.
온 세상의 중력이 나에게만 작용한 듯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동시에 너무 어지러웠다.
몇 초간 넘어진 채로 누워있는데 멀리서 선생님이
“손 조심해!”
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알았다. 내 오른팔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는 걸.
나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팔을 조금만 늦게 거두었다면 손가락이 잘려 나갔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이었다고 선생님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 뒤로 어떻게 아이스링크장을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의무실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한동안 얼얼했던 무릎이 현실감을 더해줬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도 꽤 쑤시고 욱신거렸다. 걷기 쉬운 상태는 아니었지만 굳이 엄마 아빠에게 전화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만 보면 어릴 때의 내가 지금보다 훨씬 씩씩하고 용감했던 것 같다. 요즘엔 사소한 불안에도 여린 가지처럼 흔들리고 휘청이는데 말이다.
많이 아팠지만 다녀온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처음 밟아본 얼음판의 느낌이 좋아서 계속 생각이 났다. 내일도 모레도 그 위에서 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하고 예쁜 매력을 가진 그곳이 자꾸만 나를 끌어당겼다.
당연하게도 엄마 아빠는 내 상처를 보고 많이 속상해했다. 자식 손가락이 종이에만 베여도 부모 눈에는 칼에 베인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물며 얼굴에 난 상처였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물음에 아팠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삐끗해서 그랬다고만 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사탕 뺏긴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2015년에는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레전드 드라마 시리즈가 방영되었다.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 가족극'이라는 소개를 달고 나온 드라마였다.
[응답하라 1988]은 너무 유명해서 아마 안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팬으로서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장면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볼 때마다 눈물 터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정봉이의 수술 신이다.
걱정하는 정봉이를 달래려 겉으로 강한 척했던 엄마는 사실 주체할 수 없이 무너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무치는 가슴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정봉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사과를 한다.
그 장면이 그렇게도 슬펐다.
나도 엄마에게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유전은 엄마 잘못이 아닌데.
엄마가 부족해서 아픈 게 절대로 아닌데.
가족은 서로를 끝없이 애달아한다. 있는 거 없는 거 다 퍼줘도 하나 잘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들면 죽도록 미안해지는 거다. 부모란 게 그렇다.
밤이 깊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나던 무드등을 켜놓고 있는데, 방 근처에서 서성이는 듯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냅다 이불을 끌어당기고 자는 척을 했다. 왠지 깨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지방을 넘어 조심스레 들어온 건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자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옆으로 왔다. 그러고는 아직 달궈지지 않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묻었다. 사방이 고요했지만 침대가 자꾸 들썩였다. 풍랑을 만난 작은 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빠는 착한 사람이라 자기 탓밖에는 할 줄 몰랐다. 자신의 과오가 가족의 불행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 살아온 죄밖에 없으면서.
안아줬어야 했는데.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얼마나 오래 아팠을까.
세상은 정말 지독하게 불공평하다.
착하고 바른 사람이 아프거나 힘든 경우가 훨씬 많다.
못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준 사람은 자기 속이 편해서 그런지 더 오래, 잘 살아간다.
어쩐지 억울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치사하다.
모르는 사이
피어난 새벽 어스름이
차가운 슬픔의 공기를 이고
기울어진 가선 위로 고이 내려앉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덜컥 수술 날짜가 잡혔다. 정밀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완곡하게 수술을 권하면서도 만약의 상황에 대해 일러줬다. 이번에 하게 될 건 인공 인대를 삽입하는 수술인데 어쩌면 큰 효과를 못 볼 수도 있다고. 이후에 탈구 증상이 계속되면 인공 관절을 삽입하는 큰 수술도 고려해 봐야 하는데 이건 평생에 한 번밖에 못하는 수술이라 어릴 때 해버리면 나이 먹고 고생할 거라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술을 하면 더 이상 삐끗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기대는 해본 적 없다. 무릎이 괜찮은 내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더 큰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무것도 몰라서 두려움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을 이리도 빙빙 돌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병원을 나오고 보니 손 위로 한 장의 책무감이 들려 있었다. 수술을 하고 나면 근육량이 감소할 수 있으니, 빠른 회복을 위해 종이에 쓰인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라고 했다. 무릎 근력을 키워주는 다양한 운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었던 건 다리를 쭉 뻗고 위아래로 들어 올리는 동작이었다. 그런데 따라 하려 하니 도저히 그림처럼 되지 않았다. 허벅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리를 쭉 뻗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꾸만 무릎이 돌아가려 해서였다. '이 상태로 삐끗을 하면 너무 아플 텐데 꼭 해야 하나?'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
어린 마음에 자꾸 회피하게 됐다. 무릎이 약하니 동작이 어려운 게 당연한데 계속되는 강요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스트레스를 낳았다.
덥덥스런 세상이 내게만 못되게 구는 순간이었다. 폈던 다리를 접을 때 안쪽으로 들어갔던 무릎이 튕겨 올라오는 느낌마저도 거북했다. 모난 돌이 하나 둘 마음에 쌓여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름 열심히 놀러 다니기도 했다. 사정상 먼 곳을 여행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학교 땡땡이치고 일찍 나와서 가족들끼리 산책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동네 구경을 했다. 가끔은 전시회도 가고 영화도 보며 앞으로 없을 여유를 즐겼다.
사실 지난 과거들이 너무 힘들었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지 않은데 이때는 유일하게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선택을 달리 해보고 싶어서의 이유가 가장 크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연습 없이 모든 게 실전인 세상에서 후회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침 집 근처에 새로운 아이스링크장이 개설됐다. 금방 수술할 거니까 굳이 몸을 조심할 이유도 없었다. 평소였다면 발길을 돌렸겠지만 이번만큼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여가를 즐기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일 입장권을 끊고 오랜만에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이번엔 절대 넘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신발끈을 꽉 조였다.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한 링크장 위에서 나는 새로 태어난 한 마리의 기린이었다. 뒤따라 올라온 아빠가 팔을 잡고 천천히 끌어줬다. 힘을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나아가는 게 재밌었다. 다리를 뻗는 모든 순간에 불안 따위는 없어지고 즐거움만 남았다.
몸 쓰는 걸 싫어하는 엄마와 동생은 멀찍이서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오랜만에 다시 듣는 사각사각 소리. 겨우내 버티고 있던 풀잎이 기어코 언 땅을 부수고 나와 자신만의 팡파르를 울리며 행진했다. 여과 없이 행복한 웃음이 훌훌히 나리는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