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돈타니의 악마
라오스 국경을 넘어 우돈타니(Udon Thani)에 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안도감이었다. 거친 흙먼지와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흥정의 피로에서 벗어나 마주한 태국은, 꽤나 문명화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널찍하게 포장된 도로, 에어컨 바람이 쏟아지는 거대한 쇼핑몰 센트럴 프라자, 그리고 활기찬 야시장까지. 예약해 둔 숙소 라마닐리아(Lamanilia) 호스텔 역시 평화롭고 깔끔했다.
짐을 풀고 나른한 오후의 볕을 쬐며, 그간 쌓인 긴장을 녹여낼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어? 한국인이네! 반가워!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혼자 배낭여행 온 거야?"
숙소 로비에서 마주친 그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혼자 여행 중인 한국인 아저씨였다. 초면에 다짜고짜 날아드는 반말. 타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라 쳐주기엔 선을 훌쩍 넘은 무례함이었지만, 그는 내 등을 툭툭 치며 호기롭게 나섰다.
"밥은 먹었고? 젊은 친구가 고생이 많네. 우돈타니는 형님이 꽉 잡고 있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형님만 따라와! 내가 오늘 망고 주스 쏜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내 앞장서 걷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저 K-아재 특유의 오지랖이려니 생각했다. 40바트짜리 달콤한 망고 주스를 반강제로 얻어먹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만남이 내 숨통을 조이는 끔찍한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친절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였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호수나 산책할까 했던 나의 계획은 아저씨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노크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자, 빨리 나와! 아침 먹어야지. 내가 기가 막힌 현지인 맛집 알아놨어. 넌 그냥 주는 대로 먹기만 하면 돼."
그가 내 손목을 끌다시피 데려간 곳은 골목 어귀의 족발 덮밥집이었다. 메뉴판을 볼 기회조차 없이 내 앞에는 산더미 같은 고기가 쌓였다.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나니, 고프로 가슴 스트랩을 사야 한다는 내 혼잣말을 찰떡같이 기억하고는 나를 센트럴 프라자 쇼핑몰로 밀어 넣었다. 9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표를 보고 내가 돌아섰지만, 아저씨의 강제 투어는 멈추지 않았다.
"뭐야, 벌써 피곤해? 젊은 놈이 체력이 왜 이래. 그럼 마사지받아야지! 내가 아는 200바트짜리 최고 샵 있어. 빨리 와!"
내 의사, 내 체력, 내 그날의 계획은 그의 '선의' 앞에서 철저히 묵살당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지만, 웃는 얼굴로 밥을 사주고 길을 안내하는, 심지어 나이를 무기로 권위를 쥐고 흔드는 고국 사람에게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라고 정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간신히 화장실로 도망쳐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앞서 이 경로를 거쳐 간 지훈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야, 나 지금 우돈타니 라마닐리아 숙소인데, 여기 50대 한국인 아저씨 한 분 계시거든? 초면에 계속 반말하고 텐션 장난 아니네. 기 빨려 죽을 거 같아...]
1분도 안 되어 지훈이에게서 다급한 답장이 날아왔다.
[지훈: 헐, 형 미친... 그 아재 아직도 거기 있어? 형, 당장 도망쳐. 나도 저번 달에 그 숙소에서 그 형님한테 걸려서 이틀 동안 끌려다니다가 멘탈 다 털렸잖아. 자기 말만 맞다고 우기고 사람 피 말려 죽이는 완전 에너지 뱀파이어야. 무조건 핑계 대고 튀어라 형!!!]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건 단순한 오지랖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탈출할 명분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때, 야시장 입구 쪽에서 구세주처럼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며칠을 함께 뒹굴었던 외국인 친구들, 'Army 브라더스' 녀석들이었다.
"어??! 형님!!"
서툰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녀석들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뻔했다. 나는 뒤따라오는 아저씨를 향해 최대한 아쉽고 안타까운 표정을 연기하며 돌아섰다.
"아이고, 이를 어쩌죠? 저 라오스에서 같이 여행하던 동생들을 여기서 딱 만나버렸네요. 오늘은 얘네랑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저씨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체격 좋은 외국인 무리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올 용기는 없었는지 순순히 발걸음을 돌렸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폐부 깊숙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형,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봤어?"
나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어. 친절을 가장한 한국 귀신."
나는 녀석들을 이끌고 근처 노점상으로 피신하듯 들어갔다. 거대한 틸라피아 생선구이 하나를 시켜놓고 맥주를 들이켰다. 지옥에서 생환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자유를 되찾은 우리는 '리듬(Rhythm)'이라는 로컬 클럽으로 향했다. 나시티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간 그곳은 클럽이라기보단 촌스러운 라이브 카페에 가까웠지만, 12시가 넘어 본격적인 EDM이 터져 나올 때 나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폭력적인 K-아재의 통제에서 벗어난, 날것 그대로의 해방감이었다.
그런데, 스테이지 한가운데서 무아지경으로 뛰어놀던 내 시야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포착됐다.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 아래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기괴하게 허우적대며 춤을 추고 있는 익숙한 중년의 실루엣.
그 아저씨였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코미디가 아니라 호러였다. 내 시선과 아저씨의 시선이 마주치기 직전, 나는 녀석들의 팔을 잡아채며 소리쳤다.
"야, 도망쳐! 당장 나가!!!"
영문도 모르는 녀석들을 끌고 클럽을 뛰쳐나와 어두운 골목길을 한참이나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선 곳은 길거리의 허름한 포장마차 앞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겸, 우리는 그곳에 주저앉아 아무 메뉴나 시켰다.
잠시 후 등장한 음식은 똠얌꿍 베이스에 꽁치가 통째로 들어간 정체불명의 라면이었다. 비주얼은 끔찍했지만, 국물을 한 숟갈 뜨는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 미쳤다."
시큼하고 매콤한 똠얌꿍의 자극적인 국물과 꽁치의 고소함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소름 돋았던 속을, 공포에 질렸던 멘탈을 뜨끈하게 씻어 내리는 기가 막힌 맛이었다. 친절이라는 가면을 쓴 악마의 소굴에서 탈출해 맛본 그 꽁치 라면의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돈타니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행여나 숙소에서 아저씨와 다시 마주칠까 두려워, 아침 일찍 도망치듯 빠져나와 우돈타니 박물관과 프라짝 호수를 겉핥기로 구경하고 서둘러 방콕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밤 10시 30분. 덜컹거리는 기차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완벽한 평화를 찾았다.
누군가 태국이 '미소의 나라'라고 했던가. 맞다. 하지만 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며 들이대는 선의와, 나이를 앞세운 억지 친절은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는 걸 나는 우돈타니에서 뼛속 깊이 배웠다. 훗날 인도에서 진짜 '나이의 품격'을 보여준 어른을 만나기 전까지, 이 우돈타니의 악마는 내게 가장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내일 눈을 뜨면, 진짜 아수라장인 방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혼돈이 낫다. 친절이라는 가면을 쓴 통제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