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미수,지옥의 라오스입국기

베트남-디엔비엔푸

by 예한

사파를 떠나는 날 아침, 산 아래는 흰 안개로 자욱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낡은 벤이 천천히 헤집고 나갔다. ‘진짜 구름 속을 달린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지만, 차 안은 냄새와 멀미와 피곤이 뒤섞인 지옥이었다. 앞좌석에서는 베트남 팝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창밖으로는 절벽 아래로 구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간쯤 달렸을 때, 누군가 오줌이 마렵다며 내려달라고 했다. 기사는 모두 내리라며 차를 멈췄다. 나는 그렇게 급하지 않았지만,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아 미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다 타자마자 문이 ‘쾅’ 닫히더니, 차가 그대로 출발하려 했다. 나는 오줌을 끊고 정신없이 달려가 차 뒤를 부술 듯 두드렸다. 다행히 차는 멈췄고, 기사는 미안하다며 문을 열어줬다. 내 배낭과 휴대폰, 전부 그 안에 있었기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없이 달렸다. 몇 시간을 그렇게 가서 도착한 곳은 베트남의 마지막 국경 도시, 디엔비엔푸였다. 이제 국경만 넘으면 라오스였다. 드디어 끝이라는 안도감이 들던 순간, 기사가 담배를 피우며 뒤돌아보더니 말했다.
“브로, 라오스 가려면 돈 더 줘야 해.”
“뭐요? 이미 다 냈잖아요.”
그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다른 가격. 연료값 올랐어.”

거짓말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면 예술이었다. 나는 단호히 “노, 더 안 줘요”라 말했고, 그는 담배를 문 채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 출발. 오늘은 끝.” 하지만 내 비자는 그날 자정에 만료였다. 하루라도 미루면 바로 불법체류자였다.


나는 가방을 들고 디엔비엔푸 마을을 뛰어다녔다. 숙소 주인에게 묻고, 식당 주인에게 묻고, 오토바이 기사에게까지 물었다. “오늘 라오스 가는 벤 있어요?” 모두 고개를 저었다. 해가 기울 무렵, 구석에 낡은 회색 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엔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사내 둘이 있었다. “라오스?”라고 묻자, 그들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20달러.”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올라탔다. 차는 곧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GPS는 끊겼고, 창밖은 여전히 안개뿐이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는 백미러로 계속 나를 훔쳐봤고, 조수석의 남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히죽거렸다.
“Where are you from?”
“한국.”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 good money.”


등줄기가 싸해졌다. 도로는 점점 좁아졌고, 불빛은 사라졌다. 차가 갑자기 멈췄다. 운전자는 “pee break”라며 내렸고, 전화로 누군가와 “투나잇, 투나잇”을 반복했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 이건 단순한 벤이 아니었다.


트렁크에는 내 배낭이 있었다. 그걸 두고 도망치면 안전하겠지만, 여행의 전부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워터, 워터” 하며 트렁크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슬쩍 열자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배낭을 메자마자 반대편으로 뛰었다. 기사가 당황해 “헤이! 헤이!”를 외쳤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안개 속을 뚫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뛰었다.


길가에 서서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나는 손을 흔들며 멈춰 세웠다. “보더! 보더!” 외치며 부탁하자 운전기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머니에 남아 있던 20달러를 그에게 건넸다 — 원래 납치미수범에게 줬어야 할 돈이었다.


그렇게 국경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라오스 국경을 넘으려면 또 다른 벤을 찾아야 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국경 앞 노점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 먹으며 벤을 기다렸다. 대부분은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차들이었다. 해가 거의 저물 무렵, 저 멀리서 벤 한 대가 다가왔다. 나는 배낭을 메고 전력으로 달려가 길을 막았다.


“라오스! 라오스!”
운전석엔 베트남 남자, 옆자리엔 라오스 여인이 타고 있었다.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하며 탔다.


국경 심사대에서 직원이 내게 달러를 요구했다. “페이먼트, 페이먼트.”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지갑을 꺼내는데, 옆에 있던 라오스 여인이 직원에게 뭐라뭐라 말을 걸었다. 잠시 후, 직원은 내가 건네려던 돈을 돌려주었다. 그녀가 내 대신 막아준 것이었다.


그 짧은 호의가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몇 시간 전까진 납치범을 피해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낯선 나라의 여인이 나를 돕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라오스로 넘어올 수 있었다. 벤은 다시 출발했고, 창밖엔 끝없는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벤은 마을마다 서서 현지인들을 태웠고, 나는 어느새 깊숙한 라오스 오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긴 하루 끝에, 살아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벤 안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다들 평온했지만, 30분쯤 지나자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웩, 웩” 하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고, 봉지들은 그들의 멀미를 담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토 냄새로 가득한 좁은 벤 안에서, 기사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볼륨을 높였다.
라오스 팝송이 똑같은 멜로디로, 무려 열 시간 가까이 반복 재생됐다.
내 엉덩이는 의자에 눌려 감각이 사라졌고, 몸은 땀과 먼지에 젖어 점점 굳어갔다.
그야말로 지옥의 이동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이 드디어 평지로 바뀌려는 찰나, 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말했다.
“유, 여기 다운.”
내 배낭을 트렁크에서 꺼내 던지듯 건네주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그곳은 라오스의 작은 버스터미널이었다 —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다음 여정의 출발점.

나는 배낭을 메고 주변을 둘러봤다.
먼지 낀 간판,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그리고 국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작은 식당.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Excuse me, is this where we buy tickets?”
돌아보니 인상 좋은 서양인이 서 있었다.
수염이 얼굴을 거의 덮다시피 했고, 배는 셔츠 단추를 밀어낼 만큼 나와 있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웃음이 많았다.

“맞아요. 여기서 표 사면 돼요.”
내가 대답하자 그는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Great! I’m João. Portugal.”
“난 예한, Korea.”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같은 버스 타네! 시간도 좀 남았는데… 밥이나 같이 먹을래?”

그렇게 우리는 터미널 옆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국수 그릇을 사이에 두고, 두 여행자의 첫 식사가 시작됐다.
그 순간만큼은 피곤도, 냄새도, 고생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 그렇게 포르투갈의 털보, 주앙이 내 여정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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