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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Dec 29. 2021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남의 나라에서 먹고 살기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일정 기간 체류 또는 완전 이주를 원하지만 일단 이주를 한 뒤 모아 놓은 돈으로 그 기간을 버틸 여력이 있거나 소위 말하는 passive income이 있어서 굳이 어디서든 수입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 이상은 어느 기간 이후에는 생계를 위한 일정한 수입을 만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불확실성이 그들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아마도 두 가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경우 visa 취득의 어려움)

나의 경우 한국에서도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이곳에서도 보통 미국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한국과 약간 다른 점이라면 지금 회사에서는 한국인이 나뿐이라는 점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미국 영화나 미국 드라마, 또는 한국의 TV에서 선진국 문화인양 선전하는 Google이나 Microsoft와 같은 거대 IT 기업의 꿈같은 직장 문화 소개를 통해 미국의 근로 환경이나 직장 문화를 간접 경험하고 stereotype을 만들어 갈 것이다. 미국의 직장 문화는 유럽의 그것과도 꽤나 다른데 나 역시도 일 년에 몇 달씩 휴가를 가고 금요일이면 회사가 텅텅 비는 유럽의 직장 문화와 미국의 직장 문화가 비슷할 것이라고 무턱대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것이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매일 출근 후 깨닫는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분야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제조업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겪은 여러 가지 것들은 나에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이 이민 생활의 적응에 도움이 된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있지만 결국 어차피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CEO부터 나까지 같은 월급쟁이이고 월급쟁이 생활이야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더럽고 치사한 것 아닌가! 또한, 그 유명한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미국 직장 내에도 돌아이가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자 돌아이인 게 되니까...)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비슷한 일들을 여기서도 경험했다. 이곳에서도 직장 상사와의 trouble, 나아가서는 상사의 갈굼으로 퇴사하는 동료를 여러 명 겪었다. 아무리 도와줘도 일머리가 없어 결국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 똑똑하고 자기 밥그릇은 절대 안 뺏기는 야망이 큰 사람들, 일보다는 사내 정치에만 목을 매는 인간들, 업무 시간에 주식이나 가상화폐 차트만 들여다보는 애들, 여자 동료들끼리 불꽃 튀는 신경전과 무서운 결과, 똑똑해서 더 좋은 직장으로 스카우트돼가는 사람 등등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동안 술자리 안주와 뒷담화 주제가 되었었던 일들을 이곳에서도 똑같이 겪었다. 개인적으로도 나의 팀원 중 한 명이 심증으로는 거의 확실히 나 때문에 다른 팀으로 자원해서 이동한 일도 있었고, 내가 내 보스에게 해고를 건의하려고 마지막까지 고심하다가 포기한 나를 힘들게 한 팀원도 아직까지 팀 내에서 월급 루팡으로 잘 지내고 있다.


직장 생활에서 상당수의 고민거리는 인간관계에서 오는데 나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라는 마인드로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대인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는 무식하게 내가 한국에서 배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왔다. 일단 나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대화하는 것보다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곳에서도 문제가 있을 경우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면 대부분 웃으면서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 문화에서는 한국에서처럼 팀원들과 회식을 하거나 하진 않지만 내가 먼저 팀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또 하다못해 말로라도 경조사나 안부를 챙기려고 노력해서 '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했다. 이번에 아이를 낳은 동료들이 몇 있는데 따로 사적으로 연락을 해 안부를 묻고 또 작지만 선물도 준비해 주었다. 특별히 힘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때면 한국 마트에서 산 한국 과자 같은 것들을 사 가지고 가서 아침 미팅 시간에 풀어놓기도 하고, 한국에 다녀오면 꼭 팀원들에게 작은 기념품이라도 챙기려고 했다. 그들이 하는 상사나 다른 팀 뒷담화에 같은 편에 서서 동조해주고 업무가 바쁠 때는 내 휴가 일정을 조정해서 나도 one team이라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이러한 것들 중 일부분은 한국의 직장 문화이기도 해서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또, 내가 한국에서 타 지역의 회사로 이직했을 때 대부분 그곳 출신인 생산직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했던 노력 중 일부이기도 하다. 내 나름 평가하자면 한국에서 통했던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이 방법은 지금까지는 미국의 직장 생활에서도 통했던 것 같다. 다행히 미국인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사내 평가도 좋은 편이다. (라고 믿고 싶다)


꼭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아이들이 급하게 Covid test를 받아야 했는데 예약할 수 있는 검사소가 없어서 home test kit이라도 찾으려고 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집 근처의 약국이나 마트를 모두 방문했고 전화로 여러 곳의 재고 확인을 하고 심지어 가까운 델라웨어(Delaware) 주에 있는 약국과 마트들까지 알아봤으나 확진자가 급증한 탓에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이웃들이 모인 community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여러 명이 자기 일처럼 이곳저곳을 알아봐 주었고 그중 한 분이 자기가 방금 방문한 약국에 본사 트럭이 막 물건을 내려놓고 갔다고 알려 주어 바로 방문하여 겨우 home test kit을 구하기도 했다. 작년에 집에 sprinkler 검사를 하러 온 검사원은 우리 아들이 Covid 때문에 집에만 있다고 하자 자기 아들을 주려고 산 사냥용 조끼와 모자를 아들 내미에게 선물로 주고 가기도 했다. 반면 몇 해 전 집을 구하려고 한국인 부동산 중개업자와 일한 적이 있었는데 문제가 많은 집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중국인 부동산 중개업자가 자기 일처럼 도와주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집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미국인 직장 동료였다. 그는 주말에 자신이 같이 가서 집을 봐주겠다고까지 했다.

팬데믹 전에는 마치 우리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 이웃들이 음식을 나누어 주어 그들 나라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이웃들과는 얼굴을 모르더라도 만나면 늘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면 적어도 옆집과 앞집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물론 인종 차별적인 느낌을 받게 한 이웃들도 있기 마련이고 영어에 엑센트가 있으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늘 만나게 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는 이렇다더라', '미국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더라'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을 통해 마치 미국이 선진국의 표준인 마냥 우리 스스로를 비교하며 일부러 자존감을 낮추는 교육을 받아왔는데 이곳에서도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사람이 있고 무단 횡단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금연구역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이곳에서도 운전을 발로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고 길거리를 쓰레기통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알다시피 조금만 공권력이 무중력 상태에 빠지면 남의 상점을 터는 무리들도 있고 다른 사람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내 가까운 주변에만 해도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가정이 있을 정도로 봉사와 기부가 삶인 일부인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다만 한 가지 미국만의 특별한 점은 (한국도 점차 이것을 따라가는 추세라 안타깝다) 내가 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둘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내가 중산층의 좋은 동네에 산다면 내 주변에 좋은 이웃들을 둘 확률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Whole Foods의 계산대에서 만나는 점원과 내 뒤에 줄을 선 사람은 나에게 친절히 말을 걸어올 확률이 높다. 반면 불행하게도 내가 사람들이 꺼리는 동네에 살 수밖에 없다면 어느 밤 이웃의 집에서 나는 총성을 듣게 될 수도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인은 그러한 동네에 들어가서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다. 여담이지만 미국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잠시 머물 숙소를 찾을 때 말도 안 되게 값이 저렴한 숙소를 찾은 적이 있다. 숙소는 괜찮아 보였고 시내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아 보였다. 거의 결제를 마치기 직전 혹시나 해서 미국인 친구한테 숙소가 어떤지 물어보았는데 친구가 실제로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 나는 그 숙소를 결제하지 않았고 훨씬 비싼 숙소를 찾아서 머물게 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녀가 한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정확히 이랬다. "너 그 동네 들어가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


Whole Foods Market은 organic 상품들을 주로 팔기 때문에 미국의 standup comedy 등에서 빈부격차에 관한 조크에 많이 인용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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