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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an 13. 2022

미국에서 코로나에 걸렸다

생존게임

지난주 토요일에 목이 약간 칼칼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정도였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약간 목이 아팠고 가끔 기침이 났지만 미국의 히팅 방식상 매우 건조해서 겨울이면 늘 겪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할게 없이 생각했다. 아침부터 가족들과 외출을 해서 스케줄을 소화했고 한인 마트에 들러 쇼핑까지 했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한인마트에서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냥 날씨도 춥고 비가 오는데 운전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곧 잠이 들었다. 이런 경우 보통 다음날 아침에 깨는 경우도 많은데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잠에서 깨니 몸살처럼 두통과 오한, 근육통이 있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체온계로 온도를 재보니 101.7F (38.7C)였다. 열이 엄청 높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하루 100만 명 이상이 확진되는...) 일단 둘째 방으로 옮겨 가고 집에 비상용으로 사두었던 코비드 홈 테스트 킷으로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일단 둘째 방에서 격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타이레놀을 먹고 보스에게 열이 있어서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는데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두통, 오한, 근육통, 속 안 좋음, 열, 기침, 목 아픔이 동시에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다. 코비드 홈 테스트 킷의 음성 오차율이 15%에 달하기 때문에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고 주변의 코로나 검사소를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빠른 시일 내에는 예약이 불가했다. 예약을 하고 검사 결과가 나 오는 날짜면 이미 완치되었거나 아니면 심해져서 치료를 받거나 하던지 결론이 이미 나있을 판이었다.

코로나 양성 결과표

결국 urgent care (한국에는 없는 미국의 준응급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검사자가 너무 많아서 증상이 없는 경우 밀첩 접촉자라도 검사가 불가능하고 예약을 받을 수 없어 방문하여 접수하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머리가 굉장히 아팠지만 내 의료보험에서 얼마까지 커버가 되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다행히 검사 비용은 커버가 되는 듯했고 다른 비용이 청구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에 다음날 일어나서 정말 컨디션이 안 좋으면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겨우 잠을 청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열은 그대로였고 컨디션은 더욱 안 좋았다. 재택근무를 병가로 바꾸고 대충 밥 한술을 쑤셔 넣고 병원에 가니 접수창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기침을 하고 있어 접수를 마치고 차에서 기다리는 옵션을 선택하여 차에서 대기했다. 대략 2시간을 좁은 차에서 떨고 난 후에 내 차례가 되어 검사를 받았고 또 기다리라고 하여 거기서 또 한 시간 가까이 겨우겨우 의사를 기다린 후 기대치 않게 검사 결과와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맨 처음 PCR 검사를 예상했으나 아마도 PCR 검사의 부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도치 않게 antigen test (flu/covid combo)를 받았던 것이었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의사는 청진기로 숨소리를 들어보고는 아직까지는 괜찮다며 특별한 처방을 해주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일단 가족들에게 알려 아이들과 아내 모두 자가격리를 실시했다. 다행히 가족들에게는 증상이 없어서 검사 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증상이 없어서 검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월요일 열은 조금 떨어졌으나 인후통과 기침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의사가 숨소리가 아직 깨끗하고 다른 증상들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했었지만 기침이 조금 심해지가 걱정이 약간 되기 시작했다. 열과 통증 때문에 타이레놀을 6시간마다 먹었고 비타민 C, 비타민 B12, 아연을 식사 후 먹어 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둔 고요량 비타민이었다. 밤이 되자 다시 오한과 몸살 증상이 심해져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기침도 심해져서 기침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병가를 연장했고 잡혀 있던 미팅들도 취소했다. 다행히 열은 떨어졌고 다른 증상들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와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엄청나게 땀을 흘렸고 물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으나 물을 마시면 속이 안 좋아져서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생각이 날 때마다 열과 산소포화도를 쟀는데 다행히 화요일이 돼서야 열은 완전히 떨어졌다. 식욕도 조금씩 돌아왔으나 월요일과 화요일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소화기관이 잘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이 되자 다시 기침과 두통이 심해졌고 기침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수요일 아침 일어났는데 무언가 고비를 넘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일시적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모든 증상들이 완화되었다. 다만 지금은 코가 막혀 있고 입천장이 까져서 식사하기가 불편하다. 오한은 계속 느끼고 있어서 지금도 히터를 킨 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아내와 아이들은 특별한 증상이 발현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에 CDC 가이드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의사로부터 이번 주 금요일까지 격리하도록 안내를 받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일요일까지 격리를 할 것이다. 나의 경우 다음 주에 사무실로 복귀할 예정이고 아내와 아이들도 중간에 증상이 발현하여 검사를 받지 않는 이상 다음 주에 회사와 학교로 복귀하면 된다. 특별히 다시 검사를 받아 음성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나와 아내는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하였고 아내는 부작용이 심해서 부스터 샷은 맞지 않았다. 나는 부스터 샷을 맞으려고 했으나 예약이 밀려 맞지 못했고 그 사이 코비드에 확진됐다. 둘째는 너무 어려서 백신을 맞출 계획이 없지만 4학년인 딸은 현재 고민 중이다. 만일 오늘 정도 컨디션에서 더 나빠지지 않고 좋아진다면 그래도 코비드에 걸려서 마일드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이것이 백신의 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작년 4월에 백신 2차 접종을 다 마쳤고 아마도 오미크론에 감염됐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백신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현상태로는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다행이다. 현재 의료 상황은 병원에 입원한다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심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코로나 확진 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신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곳에서는 각자도생 밖에는 길이 없다. 나 역시도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타이레놀 대용량, 여분의 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고용량 비타민, 감기약 등등의 준비를 해두었는데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증상 발현 후 아직 5일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아직 뭐라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코비드는 전에 감기나 독감, 신종플루에 감염됐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 주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짧은 시간에 갑자기 증상이 안 좋아지는 것에 특히 놀랐다. 코로나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일상생활이 가능하던 사람을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랬으니 떠날 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으로 며칠 사이 말끔히 후유증을 남기지 않고 떠났으면 한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작성하다 보니 글이 엉망일 수도 있는데 지금의 집중력과 체력으로는 이것이 한계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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