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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Jan 04. 2022

느리고 불편하게 살기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

나는 1월 3일 월요일 오전 10시가 가까운 시간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 내 주변에만 대여섯 명의 내 또래 또는 중년의 남성들이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며 나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월 1일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회사로부터 오늘 대체 휴일을 부여받았을 수도 있고 업무를 이곳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출근 시간 전에 잠깐 들려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말연시에 다른 이들보다 긴 휴가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도 12월 23일 오후부터 오늘까지 긴 연말 휴가를 즐기고 있다. 긴 연휴 끝 월요일 오전, 지금 이곳은 한 해를 조금 더 여유 있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집에 실내 난방을 위한 가스비를 내기 위해 우편으로 배달된 청구서를 확인하고 수표를 써서 청구서와 함께 보내진 우편 봉투에 집어넣었다. 봉투에는 보내는 사람인 내 주소를 손으로 직접 쓰고 집에 도착하면 우표를 붙인 후 다시 우리 집의 우체통으로 가서 외부로 발송할 우편물들을 모아놓는 우편함에 집어넣어야 한다. 물론 자동이체로 납부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그런데 무려 수수료가 발생하고 그것이 한국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라 매달 이렇게 우편으로 가스비를 내고 있는데 가끔 깜빡하고 연체료를 물어 와이프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하루 만에 되는 서비스를 많이 겪어 보지 못했다. 물론 얼마 전 아마존 프라임으로 산 맥북 충전기가 다음날 도착한 적이 있지만 아마존 프라임조차 제 때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수년 전에 차로 5분 거리인 집 앞에서 매트리스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배송 트럭 일정 때문이라며 거의 5일 정도 후에 배송을 해준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내가 구매한 제품이 아닌 다른 제품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래서 추가로 며칠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미국 사람들이 기름값이 많이 들고 차값이 비싼 픽업트럭을 괜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어지간한 물건은 내 미니밴으로 직접 싣고 온다. 배송도 늦지만 배송 서비스의 비용도 굉장히 비싸기 때문이다.

관공서에 갈 일이 있으면 진짜 한숨부터 나온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인내심이 필요한 곳이고 대놓고 하는 인종 차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 사람들 사이에 어떤 담당자는 피하라는 정보를 공유할 정도일까... 대부분 정확한 프로토콜이 없기 때문에 체류 신분에 따라서도 다른 처우와 결과를 받아야 하고 이것에 대한 항의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에 와이프가 단순 체류 비자를 가지고 있는 친구와 운전면허 사무소를 방문했는데 그 친구분의 운전면허 발급이 특별한 이유 없이 여러 번 거부된 일이 있었다. 와이프가 그 운전면허 사무소에서 신규 발급 및 갱신 업무까지 했었는데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국에서 사는 일은 매우 느리고 불편하다.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 산 경험이 많은 이민자일수록 이러한 느리고 불편한 일처리에 대해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신속하고 친절하고 정확한 한국의 서비스야 말로 대한민국의 강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으뜸 가는 한국의 수준을 레퍼런스로 둔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느리고 불편하고 친절하지 않은 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느리고 불편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여유로워야 하고 또한 너그러워야 한다. 몇 달 전인가 둘째가 병원을 다녀왔는데 한참 후에 병원비 청구서가 우편으로 날아왔다. 마침 아내가 의료비 전용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다시 받는다는 게 깜빡해버리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두 번째 청구서가 날아왔다. 청구서는 독촉이나 연체료 등이 추가된 것이 아닌 단지 마감일만 연기된 청구서였다. 병원 측에서 등기로 우편을 보내지 않았고 미국에서 우편물이 분실되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 reminder 개념으로 다시 한번 청구서를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첫 번째 청구서를 받았을 때 깜빡한 것도 이런 느슨함 때문이다. (핑계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미국에 살면서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런 느슨함과 여유로움이다. 이것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조급함이 아직 덜 미국화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한국이 이 부분에서 비정상적으로 훌륭하기 때문 일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 사회의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여유로운 문화는 내가 이곳에 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없고 현재의 조직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내가 근무했던 회사 중 하나는 지각을 했을 경우 시말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근무했던 회사 중 다른 회사는 지각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는데 그것은 매일 매우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오전 일찍이나 오후 늦게는 회의 일정을 웬만하면 잡지 않는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조금 늦게 출근을 하기도 하고 조금 먼저 퇴근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8시까지 출근을 하려고 하는데 강박적으로 그 시간을 맞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추어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하기 때문에 8시 20 - 30분경에 사무실에 도착하는 편이다. 일이 바쁜 경우에는 8시 훨씬 전에도 출근하기도 하지만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마다 쩔쩔매는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사정이 있는 경우 한두 시간 정도 먼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부족한 근무 시간은 나중에 재택근무 등으로 채워 넣어도 되고 굳이 채워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 꼭 업무 시간과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업무 상 실수에 있어서도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단, 어느 선까지만...) 맨 처음 미국에서 일을 할 때 재미있고 약간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내가 본의 아니게 다른 엔지니어가 선정한 부품이 사양에 맞지 않는 것을 지적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실적을 올리기에 필사적인 부분이 있었다. 동료를 등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새로 부품을 선정하고 구매한 재고를 처리하고 더 이상 신규 구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맨 처음 부품을 선정한 동료와 함께 보스의 방으로 가서 보고를 했다. 한국에서의 내 경험대로였다면 먼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보고해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얼마의 손해가 있었는지도 보고를 해야 했을 테고 경우에 따라 담당자가 문책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 보스는 먼저 우리가 얼마나 그 문제를 잘 처리했는지에 대해 칭찬을 했고 이번 일이 우리에게 좋은 레슨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의 학교 수업을 보면 참 진도가 느리다 못해 때로는 너무 느슨한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내년이면 한국으로 치면 중학생이 되는데 이제야 나눗셈을 배우고 있다. 어제는 반에서 자기는 구구단을 외우고 있어서 가끔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자랑을 했다. 물론 미국에서는 학교마다 수준 차이가 엄청나게 크고 또 학교 내에서도 우월반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수업 진도가 다 다르지만 우리 딸은 평범한 공립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평균적인 미국 학교 수준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을 배우던 시험지를 가져오면 점수에 상관없이 선생님의 칭찬글이 적혀 있다. 학부모 상담을 가도 칭찬 일색이다. 그래서 딸도 언제나 점수에 상관없이 시험지를 당당히 내밀며 칭찬을 기대한다. 학교에서 발표회 같은 걸 할 때도 모든 아이들이 자신감에 차있는 것을 보게 된다. 관객들 앞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주눅이 드는 모습이 없다.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지난달 있어 가족들과 참석했다. 첫째가 집에서 연습하는 걸 본 걸로 비춰 보았을 때 큰 기대를 갖지 않게 하는 콘서트였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 않았다. 한국에서 1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을 이곳에서는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취감에 기뻐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아낌없이 칭찬했으며 거기 모인 가족들은 아이들의 연주를 진심으로 즐겼다. 거기 모인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했으니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Winter Concert 연주 후 지휘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칭찬하는 모습


글을 쓰다 보니 나는 느리고 불편하게 살기 위해 이곳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느리고 불편하게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빠르고 편리하게 살았던 삶에서 잃었던 것들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잃고 싶은지는 내가 어떤 것들에 더 무게를 두는지에 달려 있다. 나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살기 좋다고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 다른 삶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 어디서 어떻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지 결정될 것이다. 그냥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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