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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Apr 24. 2023

뜨거운 감자가 된 재택근무

이전과는 같아질 수 없는 세계

팬데믹 기간 중에는 우리 회사도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처음 하는 재택근무에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다시 세팅해야 했고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면하지 않아도 대부분 업무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온라인화 되었다. 그러다 코비드 상황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을 다시 오피스로 돌아오게 했지만 돌아온 대부분이 심하게 한 번씩 앓는 싸이클 한 번이 지나가는 동안 여러 이유로 모두가 이전처럼 오피스에 돌아올 수는 없었다. 아직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재택근무가 우선이다. 그렇게 동부의 긴 겨울 동안 기본적으로 1주에 이틀은 재택근무가 가능하게 회사 내규가 바뀌었다. 비록 나는 너무 바빠서 1주일에 이틀은커녕 금요일 하루로 지정해 놓은 재택 근무일에도 사무실에 출근하기 일쑤였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최소 하루 또는 이틀을 재택근무하고 있다. 그러다가 겨울이 지나고 미국을 대표하는 IT기업들부터 직원들을 오피스로 돌아오게 만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재택근무는 팬데믹 동안 어쩔 수 없이 안전상의 이유로 채택하게 된 방식이고 업무 효율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기류가 산업 전반에 퍼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도 새로운 업무 지침으로 주 2회 재택근무를 주 1회로 변경하겠다고 공지했다.


근로자: 재택근무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측: 업무 효율과 팀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근로자: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업무 효율이나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팀 분위기나 커뮤니케이션이 재택근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데이터나 재택근무를 줄임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 또는 팀 분위기 개선 등의 구체적인 골을 알려 주세요.
사측: 구체적인 데이터를 알려 줄 수는 없지만 재택근무로 인해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수차례 보고되어 왔습니다. 일단 돌아오세요.


경영진에서는 퍼포먼스와 관련된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업무 분위기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이유로 재택근무일수를 줄인다고 주장했지만 생각보다 젊은 팀장들의 반발이 매우 거세었다. 매니지먼트와 수차례 미팅이 있었지만 조금의 접점도 찾을 수 없었고 분위기는 매우 험악해졌다. 결국 미팅 중 젊은 팀장들 사이에서 이직하는 팀원들을 막기 어려워 질지도 모르고 또 그들 중 일부가 떠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단 하루 재택근무 일수를 줄인다고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경영진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 모르나 다음 수순은 당연히 재택근무를 없애고 모두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일 터이니 결국 재택근무냐 아니냐의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경영진에서는 그렇게 되면 HR을 통해 빠르게 충원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초강수로 나섰다. 어느 정도 타혐점은 재택근무를 없애고 유연 근무제를 강화하겠다는 이야기였는데 Core Hour를 지정하고 그 외 시간은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근무 시간을 조정해 주 4일 근무나 주 4.5일 근무도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도 유연 근무제가 있고 거기에 재택근무가 있는 것인데 유연 근무제를 강화해 봤자 실제적으로 얻는 혜택이 매우 줄어드므로 직원들 입장에서는 조삼모사와 같은 것이었다.


사실 나는 재택근무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주 1회 정도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장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3회 이상 넘어가게 되면 사실 협업에 있어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특정인들에게서는 퍼포먼스가 엄청나게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회사 측에서도 그런 것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들을 활용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모두를 다시 오피스로 불러 모으는 것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실로 복귀 후 팀 분위기나 업무 분위기도 조금 더 개선된 것 같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들도 다시 시작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 (?) 팀장들이나 엔지니어들에게는 - 꼰대 갔겠지만 나랑 같은 직급인 그들과 나는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한국이었다면 그들과 내가 같은 직급인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재택근무가 나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동료 한 명과 오피스를 셰어하고 있는데 - 그 동료가 지금은 한 팀의 팀장인데 원래 내가 내 팀의 엔지니어로 뽑은 내 팀원이었음. 그러니 나에게 있어 나의 핸디캡을 딛고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나의 한계 역시 매일 느끼게 해 줌. - 그 동료의 팀원 (작년인가 올해인가 대학을 막 졸업한)이 그에게 찾아와 다음날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미국에서는 딱히 이유를 묻지 않고 보통은 알았다고 하는데 그 친구가 재택근무를 요청하며 하는 말이 나에게는 정말 새로웠다.


나 지금 socially discharged 됐어.


간단하게 말해 사무실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5일을 연속해서 근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세대는 아마도 대학 수업의 상당 부분을 온라인으로 수강했을 터이고 심지어 구직을 위한 인터뷰조차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진행했을 터이다. 사무실을 지나다 보면 대부분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수준을 넘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업무를 진행한다. 계속해서 소셜 미디어에 접속 중이고 딱히 누군가와 사무실 내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점심 식사도 대부분 자신의 데스크에서 혼자 먹는 모습을 자주 보고 한국으로 치면 회식 같은 자리에도 잘 참석하는 법이 없다.


이런 친구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이면 과연 팀빌딩이 될까?


개인적으로는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런 이유로 나도 그들 편에서 이번 회사의 규정 변경을 성토하는 대화에 끼곤 하는데 이유는 단순히 그들을 오피스로 불러들이는 걸로는 그 어떤 긍정적인 면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재택 근무일 때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온라인에서)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 성급한 일반화라고 하지는 말기를… 아직까지도 우리 회사 즉 개인적인 이야기 중이니까 - 자기 업무에도 조금 더 집중하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새는 모두가 사무실에 있음에도 MS Teams에서 회의를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는 이것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편 많은 이들이 또 재택근무를 우리 회사의 복지, 아니 나아가서는 compensation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팬데믹 기간에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을 다했음에도 자신들의 복지를 회수해 간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떤 면에서는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도 한데 출근을 위해서 시간과 유류비 같은 실제적인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워라밸을 중시하는 모두에게 출퇴근에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게 의미하는 부분이 상당하기도 한 것 같다.


결국 사측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노조는 없지만 근로자 측은 철회가 안된다면 보류를 요구하고 있는데 워낙 경영진의 의지가 강해 요원한 것 같다. 아마도 남은 하루의 재택근무 역시 폐지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도 모두를 사무실로 돌아오게 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조차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기에 내년 이맘때쯤이면 아마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가 분명해질 것 같다. 혹자는 재택근무가 화이트 컬러 일자리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이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은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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