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의 소도시에서
한국에서 월급쟁이들에게 꿈의 넘버라면 그래도 아직 연봉 1억이 아닐까? 아무리 일부 대기업에서 1억에 가까운 연봉을 준다고 해도 그래도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각 나라마다 생활비가 다르고 물가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연봉의 가치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이 1억이라는 연봉을 USD로 환산해서 어느 나라라로 가져가더라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고소득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이 연봉 1억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미국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지역마다 생활 수준과 물가가 상이하기 때문에 연봉에서도 큰 차이가 있는 편이다. 더욱이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한 나라이기 때문에 같은 연봉이라도 본인이 속해 있는 사회적 그룹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동부의 소도시 또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를 기준으로 연봉 1억이란 미국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인지 내 생각을 말해 보려고 한다.
연봉 1억 (세전 기준)을 USD로 환산하면 대충 $75,000 정도 되는 것 같다. 이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냐면 미국의 괜찮은 사립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첫 학기에 지불해야 되는 금액이랑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동부에 있는 한국 사람이 이름을 알만한 사립대학교에 등록금 지원 없이 입학한다면 첫 학기에는 1억 정도는 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기숙사 비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내가 참고한 자료에서는 미국인의 average annual salary가 $94,500이라고 하니 그보다는 약 $20,000 낮은 금액이다. 그러나 lowest annual salary가 $22,400이고 다른 자료에서 참조한 median salary level은 $56,420이기 때문에 연봉 1억은 미국에서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만일 부부 둘 합산 소득이 $150,000 정도 된다면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중산층으로 불릴만할 것 같다. 내가 본 자료에서는 highest annual salary가 $421,700 될 정도로 미국에서는 직종에 따라 소득의 격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우리 회사는 제조업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한국과 굉장히 비슷하다. 물론 직제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지만 여기서는 한국을 기준으로 나름의 해석을 더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당연히 내가 다른 사람들의 연봉을 볼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러나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원하던 원치 않던 여러 경로로 여러 사람의 연봉 수준을 알게 된다. 가령 연봉에 불만을 품고 퇴사하는 사람이 다 불어 버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 우리 회사에서는 누가 연봉 1억을 벌까? 일단 현장직들은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특근을 많이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재작년인가 나랑 친한 현장직 직원이 연차도 포기하고 많은 특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봉이 (물론 현장직은 시급으로 급여가 책정되지만) 한화로 1억에 상당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에 대략 연봉은 7 - 8천만 원 수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반 사무직에서는 4년제 학위가 있는 정규직은 대부분 한화로 1억 이상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경력이 없는 신입의 경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8 - 9 천만 원 수준은 된다고 생각한다. 간혹 고졸이나 초대졸인 직원들도 있는데 그럴 경우 보통은 비즈니스 외적인 일의 담당자들인 경우이고 급여 체계가 다를 수 있다.
고객을 방문해야 하는 서비스 직원들의 경우 물론 연봉 1억은 거뜬히 넘고 팬데믹 기간에는 수당 등을 더해 1억 2천만 (6 figures)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고 들었다. 서비스 직원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치면 고졸이나 초대졸인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들의 경우는 우리 회사에서는 한화로 연봉 1억 미만인 경우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유는 시장의 가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최근 1년간 정말 많은 엔지니어들이 떠났고 정말 많은 엔지니어들을 신규 채용했으며 채용 중이다. 일단 요새는 내 경험으로 4년제 공학 학위를 가자고 있는 졸업 예정자들의 희망 연봉이 $70 위에서 시작하는 느낌이고 대부분 $80,000 - $100,000에서 끝나는데 지금 미국의 job market에서는 그 희망 연봉의 최저 영역대에서는 사람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고 구한다고 해도 정말 수준이 떨어지는 구직자를 만나기 일쑤이다.(내 경험으로…) 다음 주 화요일에 panel interview가 잡혀 있는데 5월에 대학 졸업 예정이고 몇 개월의 인턴쉽 경험이 있는 친구이다. 현재 희망 연봉은 $80,000 - $90,000이고 우리 회사를 포함해 다른 두 개의 회사와 면접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화요일 면접이 끝나고 곧바로 결과 리뷰를 할 예정이고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가장 비싼 금액을 적어 오퍼를 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신입의 초봉이 현재 다른 엔지니어 그 누구의 초봉보다 높다는 것이다. 이건 이 신입이 그만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계속된 인플레이션 때문에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엔지니어들에게는 한해 오르는 연봉은 눈곱만큼이고 결국은 생존을 위해 이직을 통해 연봉을 올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수의 엔지니어들을 잃었고 그중 몇은 내가 counter offer를 넣었는데 그들이 이직하는 회사의 연봉 (대부분 1.5배 정도였음)을 듣고는 그저 이직을 축하해 주고 나올 수밖에 없었었다.
얼마 전에 학부 공대 프로그램으로는 미국 30위권 내의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한 지원자를 인터뷰했다. 복수전공까지 했고 인턴쉽 경험까지 했는데 내 간단한 질문에 조차 대답하지 못했고 역시 면접 때 열정이나 호기심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최근의 공학 교육이 문제인지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던 불운한 세대인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 기준에는 한국으로 치면 1학년 때 교양만 듣다고 처음 기초 전공을 듣는 2학년 또는 2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 3학년 전공을 막 이어 듣기 시작하는 3학년 정로 밖에는 안 느껴졌는데 무슨 무슨 디자인 프로젝트를 마치고 인턴쉽에서는 본인이 어떤 걸 개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나도 면접을 볼 때는 어느 선에서 구라를 치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사기 수준이다. 그러면서 정말 중하게 묻는 질문은 회사의 “vibe”가 어떻냐는 거였다. 난 정말 꽉 막힌 사람은 아니고 나 역시 “vibe”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라면 그 외에 다른 질문에 조금 더 무게를 둘 것 같다. 물론 연봉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당연히 연봉 1억은 깔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도 저들 나이 때는 내가 당연히 받아야 되는 돈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저들을 1억 주고 사 와서 어떻게 그보다 많은 돈을 벌 것인지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 중간 위치에 있다 보니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성비로만 따진다면 나는 한국 친구들을 채용하겠다. 좋은 공학 교육을 마쳤고 스펙이라고 해서 다양한 경험도 있고 또 군대까지 다녀온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현실은 비자라는 벽에 막혀 불가능한 이야기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