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내면의 디자인
현존 인류는 우주공간 속의 수많은 별 중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구라는 곳에서 유일무이하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이는 생명체를 가진 인간만이 유일하게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다. 실업자·장애인·중증환자처럼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거나 관리 대상인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직업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와 동일하다. 그렇다고 한 개인의 가치가 직업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인간 각각의 개개인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기 위한 과정과, 직업을 찾고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독자들과 고민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인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초자연적인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 인생을 설계해 실행하고, 그 결과를 검토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든 과정을 “디자인”으로 명해 논해 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인간에게 필수적인 3요소는 의·식·주다. 언제부터인지 이 3요소에는 디자인이 늘 함께한다. 먹는 것마저도 에너지를 충전해 삶과 건강을 유지하는 필수적 요소를 넘어, 오감뿐 아니라 인간 신체의 모든 감각의 문을 열어젖히게 한다. 이 시간에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무수한 사람들에겐 죄스러움을 머금을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지구촌의 다른 동물들은 먹는 것에 사활을 걸며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질서를 만들어 냈다. 일부 동물들은 땅을 파거나 물속이나 다른 식물 등의 잔해를 이용해 보금자리를 만든다. 하지만 옷은 입지 않는다. 인간만이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이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느냐, 아니면 자연환경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진화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아직도 문명 세계와 단절된 원주민들은 벌거벗거나 자연이 주는 물질을 활용해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생활하기도 한다.
인간은 왜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아내 하와가 뱀의 꾐에 빠져 만지지도 먹지도 말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는 성경에서의 말이 참이라면 정말 다행인 것이 아닌가. 눈이 열리지 않아 부끄러움을 모르고 알몸으로 생활했다면 인간도 동물과 같은 삶을 유지했을 것이고, 인류문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최소 8만3천년, 최고 17만여년 전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직물은 1차 산업혁명의 씨앗이 돼 현재 세계 패션 시장규모를 2조달러, 공급망까지 합치면 4조달러로 예측한다. 우리 인류는 의류를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일상생활과 노동 등 삶에 필요한 기능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무한한 욕구인 미를 추구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디자이너 같은 패션 분야 노동자들의 숨은 눈물은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외적인 미를 추구하기 위해 옷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조건을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몸짱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코를 세우고 눈꺼풀을 만들고 광대뼈를 깎고 턱선을 교정하고 피부를 당기는 등 성형이 일상화돼 있다.
우리 인간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추구했고, 그 열매를 후대에 전승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디자인이다.
이러한 인간의 외면적인 디자인을 통해 인류의 문명이 발전한 것과 같이 내면 또한 변했을까? 인간이 자신의 알몸이 부끄러워 옷으로 가렸다 하자. 이는 외면적인 디자인이다. 반면 옷으로 가려진 타인의 알몸을 궁금해하고 그 궁금해한 마음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면적인 디자인이다. 우리는 이제 상업화돼 있는 외면적인 디자인을 넘어 내면적인 디자인에 좀 더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