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부모의 뇌과학
"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밌었어?"
저녁 7시, 우리 가족의 식탁은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첫째가 친구와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둘째는 형의 말에 끼어들며 자기 이야기를 보태곤 했죠. 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7시 30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수학 복습은 했어?"
제 입에서 나온 한마디였습니다. 첫째의 표정이 굳어졌고, 젓가락질이 느려졌습니다.
"아직 안 했는데... 이따가 할게요."
"이따가? 어제도 그렇게 말하고 안 했잖아. 매일 복습하기로 약속했으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숙였고, 둘째는 불안한 눈빛으로 저와 형을 번갈아 봤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네가 스스로 하겠다고 해놓고!"
식탁을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 물컵이 덜컹거렸고, 아이들은 놀라 몸을 움츠렸습니다. 30분 전까지 웃음꽃이 피었던 식탁은 이제 침묵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고 난 뒤, 저는 식탁에 혼자 남았습니다. 차가워진 밥그릇을 보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악순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처 주고,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화를 내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8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1000여 명의 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상담할 때마다 비슷한 고백을 들었습니다.
"저도 아이한테 화내고 나면 너무 후회돼요."
"좋게 말하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사실상 모든 부모님들이 같은 경험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나쁜 부모여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원래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아직도 1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고 있습니다.
이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당장 달콤한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눈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침이 고이시나요? 다이어트 중이어도 참기 힘드시죠? 이것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1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에게 단맛은 '생존의 신호'였습니다. 과일의 단맛은 에너지원을 의미했고, 이것을 발견하면 무조건 먹어야 했습니다. 다음에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우리 뇌는 단맛을 감지하면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합니다. "지금 당장 먹어! 최대한 많이!"
2025년인 지금, 편의점에 가면 언제든 초콜릿을 살 수 있지만, 우리 뇌는 여전히 "지금 안 먹으면 죽어!"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그토록 힘든 것입니다.
부모의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시시대에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데 가면? 맹수의 먹이가 됩니다. 조용히 하라는데 떠들면? 포식자에게 위치가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의 뇌는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즉각 반응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편도체라는 뇌의 화재경보기가 사이렌을 울립니다. "위험! 당장 조치를 취해!"
이 신호가 울리면,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은 0.5초 만에 꺼집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원시인 모드'가 되어 큰 소리로 위협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립니다. 10만 년 전에는 이것이 아이를 살리는 행동이었으니까요.
문제는 지금 아이가 숙제를 안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여전히 이를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강력한 본능을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 그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화가 오르기 시작하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숨이 가빠지고, 턱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올라가고, 주먹을 쥐게 됩니다. 이때가 골든타임입니다. 이 신호를 감지하자마자, 무조건 자리를 떠나세요. 화장실로, 베란다로, 현관으로. 어디든 좋습니다.
만약 한마디라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가세요: "잠깐, 10분 뒤에 이야기하자." 그게 전부입니다. 설명도, 이유도 필요 없습니다. 일단 물리적 거리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자리를 떠난 후에 심호흡을 하든, 찬물을 마시든, 그건 다음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Clark 연구팀(2021)의 실험에서도 확인됐습니다. 화가 난 상황에서 10초만 물리적 거리를 두면, 편도체의 활동(본능)이 급격히 감소하고 전전두피질(이성)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 러닝머신을 뛰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고작 1.5도의 경사를 주고 30분을 걷고 뛰었습니다. 속도도 시속 6~8km 정도로 빠르지 않았죠. 그런데 운동을 마치고 보니 제가 올라간 고도가 얼마인지 아세요?
500미터였습니다.
1.5도라는 것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미세한 경사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30분을 움직였더니 잠실 롯데월드타워(555m)와 비슷한 높이를 올라간 것입니다.
감정 조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맛을 끊는 것만큼이나 어렵죠.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매일 1.5도의 노력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화가 날 때 자리를 떠나는 것. 내일은 10초 더 참아보는 것. 모레는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어느새 우리는 500미터 높이에 올라가 있을 겁니다.
저는 어제도 실패했습니다. 둘째가 약속을 어겼고,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습니다. 6개월 전에는 10분을 소리쳤거든요. 지금은 1분으로 줄었습니다.
다이어트를 생각해보세요. 오늘 치킨을 먹었다고 다이어트가 끝난 건 아닙니다.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감정 조절도 같습니다. 알고, 실천하고, 실패하고, 다시 실천하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성장입니다.
Zimmer-Gembeck 교수의 연구(2022)에서도 밝혀졌듯이,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노력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실패와 회복 과정을 보며, 아이들도 배웁니다. 감정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저녁도 비슷한 상황이 올 겁니다. 아이가 약속을 안 지키거나, 숙제를 미루거나, 동생과 싸울 겁니다.
제 안의 10만 년 된 원시인이 깨어날 겁니다. "위험! 당장 조치를 취해!"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이것이 본능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본능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일단 자리를 떠나는 것.
단 1.5도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매일 실천하면, 우리는 분명 다른 부모가 되어 있을 겁니다.
턱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 즉시 자리를 떠나기 → (가능하면) "10분 뒤에 이야기하자" → 다른 공간에서 심호흡 3회
부모의 분노는 10만 년 전 생존본능(편도체)의 작동이며, 물리적 거리두기로 전전두피질을 다시 켤 수 있다.
"잠깐, 10분 뒤에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