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는 없습니다, 부모 뇌의 '착각'일 뿐

아이가 울면 화나는 부모, 동기를 보면 해결된다

by 원장 아빠

"아빠!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고 싶어!"


수영장에서였습니다. 당시 6살이던 큰아이가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위험하니까 말렸더니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큰 소리로, 끝없이.


"왜 안 돼! 나는 거꾸로 올라가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저는 당황하며 아이를 달래려 했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 심해졌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제가 먼저 누르면 울고, 엄마가 퇴근하지 않으면 잠을 자려 하지 않고 울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저는 답답했습니다. '내 아들이 맞나?'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예민한지,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왜 이렇게 유별날까'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아빠로서 아들이 씩씩하게 크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예민함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달래기보다는 되려 화내고 누르려 했습니다. 소리지르고, 밤에 후회했습니다. 의지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부모의 뇌는 여전히 '사바나의 본능'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내 아이 앞에서는 이성이 느립니다. 그런데 이 본능의 경보가 가장 시끄럽게 울리는 순간은 바로 아이가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할 때입니다.


놀이터의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내 아이의 울음소리만 정확히 골라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 모두 있으시죠?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고, 말이 빨라집니다.



행동은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그때 배운 것이 있습니다. '행동은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엔진 경고등'과 같습니다. 끄는 게 아니라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소리 지르고 던지고 거짓말할 때, 대개는 '의지 부족'이 아닙니다. 불안·좌절·답답함 같은 내적 결핍의 신호입니다.


로스 그린(Ross Greene)의 말처럼 "아이들은 할 수 있다면 잘합니다(Kids do well if they can)". 즉, 아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기술이나 정서적 자원이 '결핍'된 상태라는 뜻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너무 불안해요." (애착, 안정감의 욕구)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돼서 좌절했어요." (유능감의 욕구)

"아무도 내 마음대로 하게 해주지 않아서 답답해요." (자율성의 욕구)



'판사'에서 '탐정'으로, 뇌를 바꾸는 전환


부모는 판사가 아닙니다. '유죄·무죄'를 외치는 순간 편도체가 더 커집니다. 판사는 행동을 보고 '유죄'와 '무죄'를 판결합니다.


우리는 탐정이 되어야 합니다. 단서를 모으고 맥락을 봅니다.
탐정은 행동을 '단서'로 삼아 숨겨진 이야기를 추리합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질문하는 순간 이성의 전전두엽이 켜집니다.

아이는 감정을 공감받으니 마음이 진정됩니다.

공감은 관계를 잇습니다.

'나는 네 편'이라는 메시지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상황에서 아이를 꾸짖는 대신, '탐정의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렇게 소리 지를 만큼 화가 많이 났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숙제하기가 싫구나. 혹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아이 감정 폭발의 9가지 원인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박사의 『아이와 나』 오디오북에서 얻은 통찰과 8년간의 현장 경험을 종합한 결과, 아이들의 감정 폭발은 큰 줄기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1단계: 몸의 신호 (생존 관련)


① 피곤함
"갑자기 확 쌔게 운다. 아이 스스로도 이유를 모른다."
→ 해결법: "힘들면 쉬었다 해. 멈추고 다음에 해도 돼."

② 배고픔
"다른 감정과 섞이면 폭발력이 커진다."
→ 해결법: 미리 간식을 챙기고, 물을 자주 마시게 하기.

③ 몸의 아픔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한 번은 확인해볼 것."
→ 해결법: 아파서 우는 건 꼭 달래줘야 한다. 공감 후 안전 관련 훈육.


2단계: 마음의 신호 (관계·훈육 관련)


④ 관심 끌기
"'어려워요~', '도와주세요~' 하면서 바로 쳐다본다."
→ 해결법: 계획된 무시하기. 대답하는 순간 강화물이 된다.

⑤ 원하는 것 떼쓰기
"미완성 작품 가져가고 싶은데... (같은 말 반복)"
→ 해결법: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기. 타협 절대 금지.

⑥ 하기 싫은 것 미루기
"아슬아슬하게 완성 못했을 때, 귀찮은 단계에서 투덜거리기."
→ 해결법: "네가 선택했으니 끝까지 해야 한다" 책임감 설명.


3단계: 압도된 신호 (감정의 용량 초과)


⑦ 감각적 불편함
"장갑 못 끼고, 의자 더러워서 일어서서 작업하기."
→ 해결법: 감각적 예민함 인정하고 대안 제시.

⑧ 감정적 혼란
"때쓰기와 함께 나타날 때 상황이 복잡해진다."
→ 해결법: 먼저 다가가서 대화 빈도 늘리기.

⑨ 과도한 부담감
"새로운 과제 앞에서 방어기제가 강하게 나옴."
→ 해결법: 선택지 많이 제시하고 과정에서 충분히 개입하기.



원인을 알면 대응이 180도 바뀝니다


제가 첫째 아이의 '미끄럼틀 사건'을 9가지로 분석해보니, 원인은 ⑤번 '원하는 것 떼쓰기'였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달래기, 설득하기, 화내기는 모두 역효과였습니다. 떼쓰기엔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단호한 경계만이 답이었습니다.

만약 원인이 ①번 '피곤함'이었다면? "많이 힘들었구나. 잠깐 쉬자"가 정답이었을 겁니다.

원인이 ④번 '관심 끌기'였다면? 계획된 무시가 가장 효과적이었겠죠.

같은 울음이라도 원인에 따라 해결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3분 진단법: 우리 아이는 몇 번일까?


현장에서 유효했던 빠른 진단법을 공유합니다.


1단계: 몸 상태 체크 (30초)
"배고프니? 어디 아파? 많이 피곤해?" →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몸의 신호(1-3번)


2단계: 상황 파악 (1분)
"무엇 때문에 화났는지 말해줄래?", "뭘 하고 싶었는데 안 됐니?"
→ 특정한 요구나 회피가 있으면 마음의 신호(4-6번)


3단계: 환경·감정 확인 (1분 30초)
"너무 시끄럽거나 불편하지?", "마음이 복잡하거나 걱정이 많지?"
→ 환경이나 내면의 압박이 있으면 압도된 신호(7-9번)


대부분의 경우 3분 안에 원인 파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알면 해결법도 명확해집니다.



단 한 문장만 기억하세요


복잡한 단계는 필요 없습니다. 아이가 울 때 이 한 문장만 말해보세요.


지금 많이 힘들구나. 뭐 때문에 그런지 말해줄래?


그냥 이것뿐입니다. 이 한 문장에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아이 감정 인정하기 ("많이 힘들구나")

원인 찾기 ("뭐 때문에 그런지")

대화 열기 ("말해줄래?")


말하기 전에 3초만 숨을 고르세요. 그것도 어렵다면 그냥 바로 말해도 됩니다. 완벽하게 할 필요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8년째 이 방법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 틀립니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지금도 가끔 틀립니다.

중요한 건 '오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 겸손이 탐정의 돋보기를 꺼내게 합니다. 어제의 진단이 틀렸다면 오늘 다시 봅니다.


아이는 '내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시도를 기억합니다. 예민한 아이일수록 이 메시지가 더욱 필요합니다.

서천석 박사의 오디오북 『아이와 나』는 출퇴근길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정은 이해받을 때 가라앉는다'는 핵심을 반복 학습했습니다.



오늘의 3분 실천


아이가 감정 폭발할 때, 달래거나 화내기 전에 속으로 물어보세요.


"1-3번(몸)? 4-6번(마음)? 7-9번(압도)? 몇 번일까?"


원인을 추정한 후, 그에 맞는 대응을 시도해보세요.



뇌기반 한 줄 요약


'행동=메시지'다. 경고등을 끄지 말고 읽어라. 라벨링과 공감으로 각성을 낮추고, 경계와 선택으로 자율성과 유능감을 돌려준다.



아이에게 바로 쓰는 문장


"지금 많이 답답했구나. 숙제는 오늘 안에는 하자. 방법은 네가 골라. 나는 네 편이야."






20170501_135228.jpg 손잡고 줄서서 기다릴 수 있으면, 아이들은 뭐든 참아낼 수 있다. 아빠만 참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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