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기준 사이, 흔들리는 부모의 마음
저녁 식탁. 제가 또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멋지게 하이파이브하며 "너의 의견을 존중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별과의 전쟁통이었습니다. 고상하게 "먹고 싶은 만큼만 먹으면 된단다"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나는 내 아이들을 빛나는 별처럼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별을 키우는 건지, 별과 전쟁 중인 건지 모르겠더군요.
8년째 아이들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350명이 넘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만났습니다. 흥미롭게도 부모들은 두 극단으로 나뉩니다.
"우리 아이 예민해요. 원하는 대로 다 해주세요" - 아이를 왕자처럼 모시는 부모.
"총이나 칼 같은 주제는 절대 못 그리게 해주세요" - 아이를 아바타처럼 조종하려는 부모.
저 역시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습니다. "애들이 놀기도 하고 게임도 좀 하는 거지"하고 관대했다가, 다음 날엔 게임하는 모습이 못마땅해 버럭버럭. 놀고 싶어하는 마음을 존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통제하고 가르쳐야 할까요?
아침엔 "우리 아들 최고!"라며 왕자 대접을 하다가, 저녁엔 "아빠 말 좀 들어!"라며 제 뜻대로 움직이길 바랍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존중과 통제 사이를 오갑니다.
답은 의외로 명확합니다. '존재와 정체성'은 왕자처럼 존중하되, '태도와 행동'은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빠는 너를 정말 사랑해"
"네가 있어서 우리 집이 행복해"
이런 말들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모든 교육의 시작입니다.
지나영 작가는 『본질육아』에서 "존중받은 아이는 자율성과 관계성의 기반 위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존재를 인정받은 아이만이 부모와 안전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배울 준비가 됩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바비인형을 꺼내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남자애들은 자동차가 더 좋을걸?" 그 뒤로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아이가 분홍색만 고집했습니다. 어머니는 "남자애가 왜 분홍색만..."이라며 걱정했죠.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은 선택이 아닌 끌림입니다. 이걸 부정하면 아이는 자신의 본질을 거부당했다고 느낍니다."
정체성이란 아이의 타고난 기질, 성향, 취미를 말합니다. 이를 부정하는 순간,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사내자식이 그 정도로 울면 안 돼", "형이니까 참아야지"
한국 사회는 유독 감정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선택이 아닙니다.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았을 때 화가 나는 건 당연합니다.
John Gottman은 "감정의 급류를 있는 그대로 읽어줄 때, 뇌의 경보가 가라앉고 성장할 준비가 된다"고 했습니다.
"화가 났구나. 그래, 당연히 속상하지" - 이 한마디가 아이의 편도체를 안정시킵니다. 감정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감정을 해석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잠깐. 왜 존중이 가르침보다 먼저일까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수학 문제를 틀렸다고 제가 다그쳤습니다. "이것도 못 푸니? 집중 좀 해!" 그 뒤로 아이는 수학 시간만 되면 연필을 놓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려 할수록 아이는 귀를 닫았고,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아이의 존재와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이의 정서가 불안정해지고 부모와 대립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틀려도 괜찮아. 네가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라고 했을 때, 아이는 다시 연필을 들었습니다.
뇌과학적으로도 명확합니다. 정서적 안정감이 먼저 확보되어야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학습이 가능해집니다. '안전한 관계'가 모든 배움의 토대인 것입니다.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의 그림을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평가한 순간, 그 아이는 다시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네 색깔이 독특하네! 어떤 마음으로 그렸어?"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존중이 먼저, 가르침은 그 다음입니다. 이 순서를 바꾸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이제 존재와 정체성을 충분히 존중했다면, 아이와 안전한 관계가 만들어졌다면, 비로소 '태도와 행동'을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화는 나도 돼. 하지만 때리는 건 절대 안 돼. 이건 우리 집 규칙이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더불어 사는 법. 이것이 모든 배움의 기초입니다. 감정은 인정하되, 행동의 경계는 선생님처럼 분명히 제시하는 것입니다.
"식탁 차리는 건 네 역할이야. 반드시 해야 해. 우리 가족을 위한 거야"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태도. 아이는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이건 선택이 아닌 의무로 가르쳐야 합니다.
Angela Duckworth는 『그릿』에서 "노력과 전략을 칭찬할 때, 아이의 유능감이 쌓인다"고 했습니다.
"틀렸지만 끝까지 풀려고 했네. 그게 진짜 실력이야"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인정하되, 포기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이건 선생님과의 약속이야"
"실패했구나. 울어도 돼. 하지만 일어서야 해. 여기서 뭘 배웠니?"
실패를 끝이 아닌 과정으로 보는 관점.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입니다.
저는 학습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태도라고 믿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올바른 태도를 배운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역할은 잔소리와 간섭이 아닌 믿음과 지지가 될 것입니다.
아이가 감정 폭발할 때, 이렇게 해보세요.
1분 - 감정 인정 (왕자 모드): "많이 화났구나.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1분 - 경계 제시 (선생님 모드): "하지만 소리 지르는 건 안 돼. 이건 규칙이야. 반드시 지켜"
1분 - 선택권과 결과 제시: "물 한 잔 마시고 사과할래? 아니면 방에서 10분 생각할래? 선택해"
순서를 꼭 기억하세요. 감정 인정이 먼저(왕자), 행동 지도는 단호하게(선생님).
사실 부모란 정말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명확하게 판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실수했고, 오늘도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존재와 정체성'은 왕자님처럼, '태도와 행동'은 선생님처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 존중이 먼저, 단호한 가르침은 그 다음.
이 단순한 원칙만 기억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방향만 맞다면, 우리는 이미 좋은 부모입니다.
오늘 저녁, 아이가 떼를 쓸 때 이 순서를 지켜보세요.
1초 - 심호흡하며 멈추기
1분 - "속상하구나. 이해해" (왕자 모드)
1분 - "하지만 이건 안 돼" (선생님 모드)
1분 - "네가 선택해. A할래, B할래?" (선택권 부여)
정서적 안정(존중)이 먼저 확보되어야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학습이 가능해집니다. 존중 없이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네 마음은 다 이해해. 화나는 건 당연해. (잠시 멈춤) 하지만 그 행동은 안 돼. 이건 우리 집 규칙이야. 꼭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