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하교 길 어릴 적 친구들과 새떼처럼 종알거리며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깡통 차기를 했다. 가방에 신주 모시듯 넣고 다니던 찌그러진 깡통 하나 신작로에 놈을 내려놓고 힘껏 걷어찰 때마다 깡통은 까맣게 날아올랐다
그 시절 우리가 세상에서 마음껏 차볼 수 있는 것은 깡통뿐이었다 월사금을 내지 못한 분풀이로 걷어차고 친구처럼 지내던 송아지를 우시장에 빼앗기고 치솟는 눈물을 깡통과 함께 날려 보냈다 고놈 깡통의 내용물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고 한 번도 먹어보거나 느껴보지 맛의 보고寶庫, 우리들의 울음소리가 서로 다르듯 깡통을 차는 사람에 따라 깡통이 우는 소리도 달랐다. 찍소리도 내고 꽥소리도 내며 꼭 닿아야할 세계라도 있는 듯 허공 멀리 비행하던 놈,
어느새 중늙은이가 된 요즘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깡통을 차지 않는다 동네가게나 할인마트에서 낯익게 만나는 각종 통조림들 이제 슬쩍 보기만 해도 어떤 내용물이 들었고 무슨 맛인지 모두 알아버렸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더 높이 날릴 꿈도 없다 마음에 드는 통조림을 사서 따 먹고는 조용히 눌러 잠재워 재활용수거함으로 보낼 뿐이다 요즈음 날로 빈 깡통이 되어가는 하루하루가 무겁고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