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등불

풍족함과 방종에 대하여

by 몽당연필


물질적으로 풍족하더라도 정신이 이에 따라가지 못한 자는, 겉은 풍요로울지언정 그 속을 채우지 못해 공허하기에 빈곤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신에 좋은 양식을 먹여 정신을 풍족하게 하더라도, 그 자가 선현과 같은 예외적인 정신적 강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물질적으로 빈궁한 자는 그 괴로움으로 정신이 마취되어 마찬가지로 빈곤한 사람이 된다.


정신의 궁색함은 적어도 외부에 드러나지는 않고, 그 허기가 대상을 공허하고 가벼운 찌꺼기와 같은 존재로 만들고 때로는 자살에 이르게도 하지만, 당장 살아나가야 하는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물질의 빈곤함은 당장 배고픔을 느끼게 하며, 행색을 군색하게 만들고, 나아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물질의 가난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정신이 고결하더라도 그 고결함을 당장 놓인 빈곤 앞에서 지켜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이유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친구의 말은 이해하며 공감한다. 그러나 이 공감은 절실한 공감은 아닐 것이다.


나는 가난을 직접 겪은 적이 없다. 운 좋게도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배고픔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자랐다. 그래서 가난의 고통을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사회에 진출해 각자의 자리에서 돈을 벌고 있을 때, 나는 그러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 괜찮은 음식점에서 만나 밥 한 끼 하자고 했을 때, 나는 그 음식점의 가격을 보고 만남에 부담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의 감정은 분명 가난 그 자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의 간극을 체감한 순간이었고, 그 간극이 쌓이고 굳어진다면, 내가 점점 더 움츠러들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자각한 순간이었다.


물질보다 정신의 풍요로움을 예찬하더라도 빈곤의 옅은 그림자 한 줄이 나의 몸을 약간 훑고 지나간 것만으로도 움츠러들고, 배고픔의 반대편인 안락함 속에서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자신이 있기에, 나 역시 지극히 물질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다.


다만, 루쉰의 「고향」의 주인공이 생각하듯이 물질적 빈곤에 의한 괴로움으로 정신이 마비되는 생활을 하는 것도 바라지 않고, 그 괴로움으로 방종한 생활을 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으며, 땅에는 본래 길이란 없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희망이라면,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곳이 길이 되기 전에 그곳을 홀로 뜨문뜨문 희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을 품에 안은 채 걸어가는 자들은 얼마나 고독한가.


빈곤하지 않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안 하기 위해,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돈을 벌되, 그 돈을 벌기 위한 행위 중 어디까지가 방종하지 않은 것이며 어디서부터 방종한 것일까. 하나둘씩 인간성이 차츰 마취되면서 방종함이라 불리는 것을 거리낌 없이 행하게 되며 그것을 대부분이 행하고 이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빈곤함을 벗어나기가 대단히 달성하기 힘든 목표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힘듦에도 그리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찌 말해야 할 것인가.


누구보다 고생과 빈곤에서 가장 거리가 있는 자가, 누구보다 치열함에서 벗어나 의무를 저버리고 안락한 일상을 누리며, 어쩌면 방종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가, 겪지도 않은 물질의 빈곤에 대해 벗어나야 하지만 이를 위시해 방종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성 없는 위선자일 허울 좋은 말일 뿐이라는 말에, 그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자의 구차한 변명이라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어 말문이 그만 막히고 만다.


괴롭지는 않으나 방종하지도 않은 것, 너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희망에 대한 길이 없는 것이라면, 제 앞길 하나 비추지 못한 채 어딘가를 바라보는 등불을 든, 그런 어중간한 자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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