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부르는 귀신-2

사건의 전말

by bowie



느닷없이 귀신을 보고 나서

놀래거나 경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지만 나의 경우는 반대이다. 깜짝 놀라는 일이 먼저 있은 후 심령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귀신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누군가 섬에는 귀신이 많다고 하던데 사실 시끄러운 도시 번화가에도 귀신은 있다. 쉽게 말해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존재한다.


유년시절 내가 살던 집은 삐걱거리며 열리는 큰 나무 대문이 있고 마당이 넓고 잘 가꿔진 나무가 많은 단독주택이었다. 왼쪽 마당에는 콘크리트로 다져서 만든 네모 반듯한 수돗가가 있어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김장을 하기 위해 어머니가 그곳에서 배추를 씻고 절이셨다.

바로 옆에는 탐스러운 비파나무가 있어서 때마다 노랗고 향기로운 비파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아직도 한입 베어물 때 입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흐르던 맛이 생각난다.

오른쪽 마당에는 어머니가 갖가지 채소를 키우는 텃밭이 있었고 큰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복숭아에 벌레가 많아 어머니가 따올 때마다 먹지 않을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중앙 마당에 있는 동그란 연못에는 붕어가 살고 있었고 넓은 연잎 위에 청개구리가 앉아있는 모습을 쭈그리고 앉아 구경하곤 했다.

그 외에도 가시가 많은 장미나무, 뾰족한 잎이 분수처럼 뻗쳐있는 야자나무, 단풍나무 등 갖가지 나무와 꽃이 가득하던 기억이 생생하여 아직도 꿈속에 종종 등장하는 하얀색 단독주택이다.




때는 여름 더위가 한창인 늦은 오후

삐걱거리며 열린 나무 대문 뒤로 처음 보는 남학생이 검은 큰 가방을 들고 덥고 지쳐 보이는 얼굴로 서 있었다.


" 엄마! 누가 왔어~ "


마당 그늘 돗자리 위에서 놀고 있던 어린 나는 집안에 있는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거실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던 어머니는 남학생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달려 나왔다.


" 아니! 네가 여기 웬일이야? 혼자 온 거야??"

" 네.... 여기밖에 아는 데가 없어서..."


어머니는 황급히 남학생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영문도 모르는 나와 어린 남동생은 호기심에 쫓아 따라갔다.

물 한잔을 내어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나와 동생은 큰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근처에 가서 앉았다.

뭔가 모를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경계가 풀린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가방 위에 말처럼 올라타고 놀기 시작했다.


" 이랴~이랴~헤헤헤"


어린 남동생도 올라타려 했지만 다리가 짧아 역부족이다.

잠시 대화가 끊기고 우리를 돌아보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화를 냈다.


" 아니 이게 뭔 줄 알고! 빨리 안 내려와!!"


황급히 나를 안아 내리고 조심스럽게 검은 가방을 들어 작은방 창가에 갖다 놓았다.

적어도 우리랑은 상관없는 건가 보다 싶어 나와 동생은 호기심을 접고 다른 놀이에 다시 집중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들어왔는데 심각한 표정을 보니 이미 남학생이 방문한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남학생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무언가를 찾다가 작은방에 있는 검은 가방을 보더니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냥 이대로 두면 어떻게! 빨리 제사상 준비해요 "

"아... 알았어요 "


어머니도 당황한 모습으로 급히 음식을 준비하고 조촐하게 제사상을 차렸다.

거실 한 공간에 상이 차려지자 아버지께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남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들어온 초등생 오빠를 포함한 우리 삼 남매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해 구석에서 조용히 놀았다.

잠시 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마실 나갔던 할머니가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할머니는 거실에 차려진 제사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 아니.. 이게 뭐냐? 오늘 제사도 없는데 무슨...? "


아버지가 할머니께 설명을 하고 남학생이 불안한 표정으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뭐? 아니 암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김 씨 집안에 고씨 제사상을 차리는 게 말이 되냐? 누구 죽어나가는 거 보고 싶어? 당장 치어랏!!!"



할머니는 노발대발 역정을 내었고 결국 제사상은 치워지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남학생은 다시 가방을 들고 아버지와 어디론가 나갔다.


한참 후에 성인이 되어 어머니께 들은 얘기지만 그 남학생은 먼 친척의 아들인데 그 아버지가 집안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어 집안사람들과 연을 끊고 살고 있었단다. 그러다 사망하게 되었는데 유일한 혈육인 고등학생 아들은 친가 어른들과 연락할 길도 없고 집도 몰라서 아버지 유골을 들고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유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어볼 어른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아버지께서 그쪽 집안 식구들과 연락하여 유골을 안치하도록 도와주고 한여름 깜짝 방문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내가 올라타고 놀았던 그 크고 검은 가방 안에는 그 남학생 아버지의 유골이 있었던 것이다.



귀신과의 만남은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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