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삼 남매는 개성이 넘친다.
도무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우리의 성향을 파악하고 별명을 지어 이름 대신 부르셨다.
오빠는 곰
동생은 합죽이
그리고 사이에 태어난 나는 맹고냉이
'맹고냉이'란 제주도 말로 '검은 고양이'란 뜻이다.
사실 아직도 내 별명이 왜 맹고냉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피부가 검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혼혈아로 오해받을 만큼 내 피부는 허여멀겠고 머리카락은 노르스름했다.
거기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커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게 너무 싫었다.
반면 오빠는 미련곰퉁이 같아 곰이라고 불리는 게 딱 어울렸다. 화내는 모습, 짜증 내는 모습을 본적이 거의 없고 식성은 얼마나 좋은지 뭐든지 복스럽게 먹어치우고 혼자 조용히 사라졌다가 배가 고프면 나타났고 어쩌다 혼이 나도 헤헤 거리며 웃었다.
동생은 내 껌딱지였다.
어딜 가나 내 손을 잡고 따라다니고 소꿉놀이며 인형놀이, 책 읽기, 그림 그리기 뭐든 함께 했다.
동그란 얼굴에 앞니가 빠져있는 모습이 합죽이 같이 귀여웠다. 집안일로 늘 바빴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는 건 내 일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같이 노는 거지만.
오빠는 오빠대로 우리 남매는 남매대로 하루일과가 지루할 틈이 없이 바쁘고 즐거웠기에 잠자리에 누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단해도 그렇게 내가 비명을 질러대는데 오빠와 동생이 깨어나지 못한 거는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둘째 밤도 어김없이 내 생체리듬은 시간이 되니 신호를 보냈고 벌떡 일어나 요강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희연.... 아"
한번 겪어서인지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 무섭고 두려웠다.
이제 인형도 없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거지?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운 마음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안보였다.
방구석에서 혼자 공포에 떨고 있는 불쌍한 어린 누이를 놔두고 세상모르게 평화롭게 자고 있는 오빠와 남동생만 있을 뿐이다.
"희연... 아"
남자일까 여자일까 알 수는 없지만 어른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는 존재인 것 같았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
바로 그때 침대 레이스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침대커버 스커트가 위로 붕 뜨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누가 잡아 올리는 모양이 아니고 수평으로 아주 깨끗하게 90도 올라갔다.
훗날 성인이 되어 공포영화를 볼 때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기시감이 들며 그때 장면이 다시 생각이 나곤 한다.
침대스커트가 위로 올라가니 컴컴한 침대 밑이 드러났고 그곳에서 무언가 나올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을 때 어른 주먹만큼 한 솜뭉치 같은 검은 형체의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가 기어 나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희연아... 희연아..."
"으~~~~ 엄마! 엄마!!"
또 나는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소리 지르는데도 침대 위에 자고 있는 오빠와 동생은 꿈쩍도 안 하는 게 신기했다.
잠시 후 아버지와 어머니 옆방 할머니까지 황급히 들어와서 나를 흔들며 물으셨다.
"왜! 왜? 희연아 무슨 일이야?"
"저, 저기 벌레가...."
"벌레? 어디? 무슨 벌레?"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방안은 멀쩡했고 침대스커트는 아무 움직임 없고 벌레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침대 밑에서 벌레가 나왔어요..."
"침대 밑에서?"
아버지가 침대스커트를 확 열어젖혔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
오빠랑 동생이라도 깨어나서 내가 본 것을 증명해 주면 좋을 텐데 그 난리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셋째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기가 약해서 헛것을 자꾸 본다고 생각했고 다음날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침놓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침 끝을 혓바닥에 살짝 대고는 내 정수리부터 꽂기 시작했다.
전날 밤 벌레들을 본 것보다 침이 내 몸에 꽂히는 상황이 더 무섭고 공포스러웠지만 어른들을 한밤중에 놀라게 만든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울지 않고 꾹 참았다.
정수리부터 온몸 구석구석 꽂히던 침은 내 발바닥에 가서야 끝이 났다. 은색 침을 온몸에 꽂고 경직된 채로 누워서 내 모습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하며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또래 사촌이 와 있었다.
방학이라 하룻밤 자고 간다길래 기쁜 마음에 온 마당과 집안을 함께 뛰어다니며 놀았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방금 전에 침을 맞고 온 사실까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또 밤이 찾아왔고 사촌에게 침대를 양보한 나에게 어머니는 침대 옆 바닥에 얇은 요를 깔아주었고 그곳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그날 온몸에 침도 맞고 사촌이랑 뛰어노느라 많이 고단했던 나는 자정에 일어나서 소변보는 루틴도 잊어버린 채 곯아떨어졌다.
대자로 뻗어 잔다는 표현처럼 나는 양팔을 벌린 채 하늘을 보며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손이 간질거리더니 무언가 팔을 기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며 깨어났다.
그리고 오른쪽을 보자 침대스커트 안에서 또 검은 솜뭉치 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고 그중에 몇 마리는 이미 내 오른손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희연아"
화들짝 놀라 일어난 나는 양팔을 정신없이 흔들며 펄쩍펄쩍 뛰었다. 벌레들이 내 몸에 붙어 있다는 게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아악~~~ 엄마! 엄마! 엄마!!!"
또 나는 한밤중 쩌렁쩌렁 비명을 질러댔고 역시나 어머니와 아버지 옆방 할머니가 급하게 뛰어오셨지만 오빠와 동생 그리고 사촌까지 그 방에 자고 있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한 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벌레가 팔에 붙어있어~~ 엉엉"
아무것도 없는 양팔을 흔들어 털면서 울부짖는 내 모습을 보며 모두들 내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굳은 표정으로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어머니의 표정과 전날밤 내가 행한 난리를 생각하며 죄책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 침을 맞아야 하나? 오늘밤에도 벌레가 나오면 어떡하지?
"엄마 우리 어디가?"
"으응... 아줌마 만나러"
조심스럽게 묻는 내 말에 어머니는 간단히 대답했다.
적어도 침 할아버지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의 친구를 만나러 가나보다 생각하며 버스 안에서 창밖의 낯선 풍경을 구경했다.
그 시절 나에게 버스 타는 일이 흔하지 않아서 멀리 소풍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아주머니가 무당을 가리키는 것은
까마득히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