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Remember to die)"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의미다.
옥스퍼드 출신의 미래학자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의 책상 위에는 항상 은색의 해골(skeleton)이 놓여 있다. 그는 매일 ‘죽음’을 곁에 두고 하루를 생각한다고 했다. 매일 죽음을 곁에 두게 되면 나머지 비즈니스들은 small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 예정된 100억짜리 수주계약도, 회사의 존망이 달려있는 내일의 소송 판결도 나의 죽음 앞에서는 small 비즈니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살면서 가장 확실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진시황제도 칭기즈칸도 나폴레옹도 스티브 잡스도 모두 죽었고 하루하루가 힘든’ 서울역 앞 노숙자도 죽을 것이다. 지금 글 쓰고 있는 나도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확실한 죽음이 언제 도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준다. 내일일지 모레 일지 아니면 10년 후일지 20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죽을 장소도 모른다. 심장마비로 오늘 저녁 잠자리에서 죽을지, 내일 길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할지, 갑자기 비행기가 떨어져 운 나쁘게 파편에 깔려 죽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그런 날카로운 칼날의 작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서용구 교수처럼 해골을 옆에 둔다는 것은 한편으로 섬찟하고 비장할 수도 있지만, 삶의 시작이 태어남이고 끝이 죽음인데 이런 중요한 포인트인 죽음을 부인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를 소중하고 가치 있게 다룰 수 있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오만과 비굴을 오가는 우리 삶에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마주 볼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당당함과 최악의 경우를 기꺼이 수용하는 양보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를 두고 이어령 교수는 “죽음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수많은 진리가 있다지만, 죽음보다 강하고 확실한 메시지는 더는 없다. 절망에 빠졌을 때나 절정의 희열을 만끽할 때나,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죽음’이라는 주제는 항상 우리를 차분하게 삶을 바라보고 통찰하게 함으로써, 겸손과 겸허를 생각하게 해주는 훌륭한 닻 역할을 한다. 기쁨의 감정이 넘쳐날 때, 기분이 아주 다운되어 우울할 때, 해골을 보고 죽음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마음의 평정심이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해골이 미니어처 형태의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글 쓰면서 처음 알았다. 해골을 상품으로 팔고 있다니! 죽음이 그토록 쉽게 구해지고 쇼핑몰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니! 재밌고 신기한 일이다.
<참조>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최송목, 유노 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