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 유쾌하게

실패의 재발견

by 최송목

폭망 하면 모두가 외면한다

통상 사람이 살짝 넘어지면 여기저기서 많이들 나서서 도와준다. 길 가다 넘어지면 도와주듯이 말이다. 사업도 약간 어려우면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어느 정도 있다. 작은 돈이니 돈도 쉽게 융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확실하게 넘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여기저기서 구원의 손길이 여전할까?


오히려 정반대다. 너무 어려워지면 도와주기를 꺼린다. 동정으로 도와주던 손길마저 끊긴다. 폭망 하면 은행도 외면하고 주변 모두가 피한다. 만나더라도 부담을 안고 억지로 만나준다.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술값, 밥값도 내가 내야 하지 않을까’, ‘보증 서 달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오만가지 걱정을 안고 만나준다. 이런 불균형 부담스러운 만남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래서 점차 우정도 멀어지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 주저앉는 자와 다시 일어서는 자의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우리는 흔히 실패나 어려움에 처하면 의욕도 떨어지고 불필요하게 남을 의식하고 평소 없던 열등의식도 유난히 민감하게 드러낸다. 동창회도 나가기 싫고, 전화하는 것도 싫고 받기도 싫어진다. 경조사도 돈만 보내거나 잘 참석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조차도 피하게 된다.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때 역발상, 역태도로 당당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유쾌한 자세, 이 정도쯤이야 별거 아니라는 몸짓은 상대로 하여금 마음의 안정과 신뢰를 가져다준다. 살면서 이 정도 생활 연기는 필요하다. 당연히 스스로에게도 최면 효과가 있다. 내부 직원들에게도 같이 적용된다. 사장의 이런 일거수일투족 태도는 ‘잘 해결되고 있나 보다’라는 희망을 줌으로써 조직의 활기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타인에게 힘을 주는 연기다.

이미지= 통로 Rㅡㄱ이

그러니, 별일 없어도 셔츠도 깔끔하게 다려 입고 구두도 광내서 다녀야 한다. 설령 회사가 어렵고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당신을 달리 볼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상대에게 ‘잘되고 있나 보다’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 사람 괜찮네, 내가 뭘 도와주면 도움이 될까?’라는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도우는 자를 도와준다.


괜찮은 척, 유쾌하지 않아도, 유쾌하게

소주 맥주 흔들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것 외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의 건재함, 여전함을 알리는 실천적 비법이 하나 있다. 바로 ‘유쾌함’이다. 흔히들 우리는 사람들 간의 만남이나 관계, 우정의 핵심을 믿음, 신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 이야기를 빌리면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유쾌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 만나기를 원한다. 아마도 ‘신뢰’라는 단어에는 ‘진지함’이라는 다소 무거운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그럴 것이다. 요즈음처럼 매사가 힘든 일상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더 우선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인생 자체도 힘든 판에 진지함으로 주변과 일상을 도배할 필요가 있을까? 진지함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필요할 때 만나면 된다. 평소 생활에서까지 진지함으로 무겁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잘 웃고 유쾌한 사람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실패한 지금, 상실감으로 마음이 무거운데 유쾌한 마음이 저절로 생길 일은 없다.


하지만 내가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내가 유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억지 유쾌함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복하다 보면 몸에 밴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호감 얻는 최고의 비결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얼굴 찡그린다고, 힘든 티 낸다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다. 티 낼수록 나만 힘들고 사람들은 점점 더 떠나간다.

사진=중앙일보

유쾌한 74세 윤여정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지난 2021년 4월 25일 102년 한국 영화사에 있어 오스카를 탄 최초의 배우 ‘윤여정’의 수상소감에 대해 국제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그의 말에는 여유와 ‘유쾌함’이 가득했다. 한 신문은 ‘유쾌한 74세’로 제목을 달기도 했다. 오스카 수상의 영화 ‘미나리’ 자체 이야기보다 그 수상소감이 주목받는 것도 특별한 일이다. 아마도 그의 ’ 유쾌함‘ 때문일 것이다.


윤여정도 그동안의 인생 여정에서 이혼, 자녀교육, 생활고, 미국 이민생활 등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단함과 역경이 있었음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유쾌함’을 유지하는 것은 오스카상 받는 한 순간의 재치로 만들어진 ‘유쾌함’이 아니라, 그간의 내공이 차곡차곡 쌓인 밀도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쾌한 탱고 음악의 비밀

덧붙여, 여기 특별한 음악 장르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탱고(Tango)다. '유쾌함'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다. 1875년 경 남성들끼리 추는 동성애 춤으로 시작된 탱고는 1910년대 유럽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이주한 이민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1920년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대유행했다. 탱고에는 타악기가 없다. 그래서 같은 선율을 리듬으로 쓸 것인지 멜로디로 쓸 것인지는 추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같은 음악에 춤이라도 본인의 컨디션과 기분, 파트너와의 교감, 실력, 그날의 분위기와 수준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관능적이다. 그래서 은밀하고 질리지 않는 춤이다.

탱고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곡의 리듬과 가사가 전혀 반대라는 점이다. 곡은 4분의 2박자로 경쾌하여 곡으로만 보면 경쾌한 음악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렇게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사(예시 사진의 빨간 글씨 표기)에는 온갖 종류의 세상 슬픔이 잔뜩 담겨 있다.


1914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주민 75%가 유럽에서 건너온 피혁공장, 도살장, 조선소에서 일하는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였다. 탱고 가사의 주제 99%가 ‘향수’인 이유다. 또 당시는 부계 중심 즉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므로 자연스럽게 탱고도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의’ 음악이 되었다. 여자는 그 배경이었다. 춤도 남자는 거의 하반신만 사용한다.


빅토르 위고는 “인생이 엄숙하면 엄숙할수록 유모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탱고는 한마디로, 고향을 떠나 온 이민자들의 향수, 외로움, 고통, 좌절이 그 경쾌함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탱고는 힘든 이들의 고통을 해소 치유하는 음악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음악이다. 속이 문들어져도 괜찮은 척 유쾌한 음악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탱고를 사랑하는가 보다.


<참조>

1. 사장으로 견딘다는 것, 최송목, 유노 북스, 2021

2. 월드뮤직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서남준, 대원사, 2003

3. 나무 위키

4.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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