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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an 06. 2023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드로잉

드로잉 왕초보 성장일기

우연히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아! 이 느낌 그대로 한 번 그려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그림이라는 걸 알았지만, 새로운 드로잉 시도가 지루함의 탈출, 발전의 출발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의미심장한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므로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 언급하고 드로잉 경과를 덧붙이고자 한다.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카라바조, 1602년, 유화, 107*146cm>

권위에 대한 의심

그림의 주제는 ‘의심’이다. 종교는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권위다. 사람들이 누군가가 정당하고, 뛰어나며, 바람직하기에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으로 그를 따를 때 권위가 생겨나고 유지된다. 그런데 종종 세상 권위는 권력과 야합하고 이때 사람들의 믿음은 예속과 맹종으로 변질하기도 한다.


이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의심'이다. 냉정한 비판과 균형의 견제를 기반으로 부당한 권위를 판단하는 출발점이 의심이다. 또 의심은 심도 있는 인식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데카르트는 참으로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의심을 통과하지 않는 한 뭔가를 깊이 이해하거나 신뢰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도마의 태도는 요즈음 말로 ‘합리적 의심’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바티칸 교황을 비롯한 종교적 권위가 공고하던 중세 당시, 비록 그림 속이지만, 예수라는 신성한 존재의 지체에 손가락까지 집어넣는 대범함과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의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치광이 화가’로 불리던 카라바조(1571∼1610,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였기에 가능했다. 더구나 중세 성화 속 인물들은 대개 신성하고 품위 있게 표현되었지만, 카라바조는 극도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신성한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집어넣는 그림을 상상하고 그린다는 것은 엄청난 불경이고 한편으로 용기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한편 제자에게 못자국 상처에 손을 넣도록 허락하는 예수의 손길이 지극히 담담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특징적이다. 자신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도록 허락하면서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무덤덤한 표정에서 역설적으로 극도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한 인간이 신의 부활을 의심하면서 상처에 손까지 넣어보는 이 생생한 장면에서 우리는 ‘신을 의심하는 한 인간’을 보게 된다. 중세를 지배하던 '감히 손도 대지 못할 고귀한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존경이나 외경심은 적어도 이 그림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카라바조 오마주 드로잉, smk226>

믿음에 대한 의심

‘믿음은 바라는 것에 대한 보증된 기대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히브리서 11:1)에 나오는 말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비록 그 대상이 신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 그 믿음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쳐야만 하는 신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 부면에서 따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과 마음과 감정까지도 온전히 열고 받아들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예수에 대한 믿음과 의심의 극단적 대비를 명암으로 표현했다.


‘의심하는 도마’는 얼핏 보면 종교적 소재의 단순 성화로만 보인다. 예수의 부활 직후 그의 부활을 직접보지 못했기에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 도마(토마스)가 예수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요한복음의 이야기에 근거한 그림이다. 요한복음 20:27에서 예수는 “당신의 손가락을 여기에 대어 보고 내 손을 보십시오. 또 당신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십시오. 더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라고 도마의 의심을 풀어 주었다.


◇ 주목해야 할 다음 이야기

이 그림의 소재인 요한복음에서는 특이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상처를 확인한 도마가 즉시 “나의 주, 나의 하느님!” (요한복음 20:28)라고 말하면서 불신에서 믿음으로 극적인 선회를 했고, 이어 예수께서  “당신은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습니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라고 한 대목이다. '꼭 눈으로 봐야 믿는 네가 안타깝다'는 뜻이다. 나아가 눈으로 보이는 현재적 믿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래 사람들의 믿음을 염두에 예언과 당부다.


결과적으로 예수 사후 2000년 동안 사람들은 예수의 존재와 부활에 대해 믿음과 의심을 반복해 왔고,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주된 걸림돌은 하느님이 보이지 않으니, 예수 부활을 보지 못했으니, 기적을 보지 않았으니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점에 대해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도마의 의심을 풀어 주면서 사람들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등장인물, 초점과 구도

예수의 제자 도마의 모습은 가난한 어부였던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 엄지 손가락에는 까맣게 때가 껴있고, 그의 왼쪽 어깨 옷은 찢어져 있다. 그와 함께 두 명의 제자가 예수의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아마도 베드로와 요한으로 추정된다. 가난한 어부였던 이들 얼굴에도 주름살이 가득하다.


카라바조의 작품 <의심하는 도마>에는 두 개의 초점이 있다. 하나는 도마의 손, 불신을 확인하려 하는 도구인 손가락이고, 또 하나는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즉 그림을 그리는 카라바조의 초점인, 예수의 왼손이다. 카라바조는 그 효과를 더하기 위해 다른 사도들의 손은 모두 감추었다. 그림에서 예수의 왼손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는 손이자 제자들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믿음으로 안내하는 손'이기도 하다.


검은 배경을 등진 네 명의 등장인물들은 아치 형태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마의 머리와 세로로 그 위에 있는 또 다른 제자의 머리가 그림의 중앙 축을 형성하고 있고, 이 축을 중심으로 네 명의 머리가 마름모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예수는 황금분할 선상에 자리하고 있고 세 명의 제자들이 오른쪽에 서 예수님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제자들의 시선은 도마의 손가락에 모여져서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로 향하고 있다. 예수의 시선 또한 도마의 손가락으로 향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하나로 집중되는 구도를 사용했다. 화면의 구성과 등장인물들이 이루고 있는 구도를 살펴보면 이 작품은 고전주의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상처에 도마가 손가락을 집어넣는 장면의 묘사는 그림을 보는 이가 바로 눈앞에서 이 사건을 보게 되는 듯 사실적이다. 그러한 생생한 묘사는 카라바조가 종교화의 성스러움에 풍속화의 사실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

어두컴컴한 배경에 11시 방향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작은 빛은 극적 대비다. 환한 예수의 어깨와 대비되는 옆구리 상처의 어두움, 그림의 맨 위에 있는 중앙 제자의 빛나는 대머리와 어둠 속에 뚫어져라 초점을 맞추고 서있는 한 제자, 도마의 왼쪽 어깨와 팔이 밝게 드러난 것과 달리 그의 몸은 대체로 짙은 어둠에 놓여있는 모습에서 또한 번의 극적인 명암의 대비를 볼 수 있다. 이런 명암의 극적인 대비는 그림 속 인물의 입체감을 끌어올린다.


그림 맨 위 제자의 빛나는 대머리는 예수의 옆에 서는 바람에 빛을 받지 못하는 한 제자와 대비되면서, 맨 위에 있는 인물이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어두움과 작은 빛을 활용해 명암의 대비를 극도로 추구해 입체감과 생생한 사실감을 느낄 수 있다, 명암대비가 일반화되고 익숙한 현대에는 당연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러한 카라바조의 혁신기법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의 혁명적 명암법을 모방하거나 응용한 카라바지스트로 불리는 후계자들이 생겨났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라투르 등이 카라바조의 드라마틱한 표현기법을 발전시킨 대가들이다. 카라바조식 명암대조법은 범죄와 폭력세계를 다룬 영화 필름누아르와 공포영화에도 영감을 줬다.

스케치 step1, 2, 3

모사 드로잉

1. 먼저 이 그림의 핵심인 네 사람의 머리와 눈의 위치를 다이아몬드형으로 배치하고, 예수님의 상처에 집어넣는 손가락을 중심으로 구도를 잡았다.

2. 네 사람의 눈동자 방향을 전부 상처로 향하도록 했다. 특히 세 제자의 눈은 다소 놀라움과 몰입감 있게 표현하려 했고, 예수님은 ‘그래 얼마든지 보여줄게’라는 태도의 눈빛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3. 예수님의 왼쪽 어깨에 밝은 빛이 오도록 했고, 가운데 도마 위의 제자 머리에 빛을 밝게 원근법으로 거리감을 줬다.   

4. 관심 기울여 봐야 될 부분은 도마의 긴장감 있는 손가락 근육, 목을 한 껏 앞으로 내민 도마의 목근육 그리고, 살며시 그의 손을 이끄는 예수님의 못자국 있는 손등이다.

5. 카라바조의 원작의 의도와는 달리 배경색은 칠하지 않았다. 실제 검은색으로 칠하려면 연필로는 한계가 있어 편의상 생략했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 중 가장 긴 시간(3일)이 걸렸고 공들인 그림이다. 인물이 네 명이고 구도가 좀 복잡하여 한 번 시도해보면 향후 그림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디테일의 여러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번 시도로 뭘 더 연습해야 할지를 잘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색감을 더하면 좀 더 깊은 느낌이 날 거 같다.

왼쪽은 원본, 오른쪽은 드로잉  smk226

<참고, 인용>

1. 김기석,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925

2. 고일석,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토마스의 의심) https://brunch.co.kr/@franz-ny/8

3. 배준용, [카라바지오, '의심하는 도마'] 의심하는 인간이야말로 자유로운 인간이다 https://junsama13.tistory.com/20

4. 이명옥, 생생하게 그린 '부활의 증거'…강렬한 빛과 어둠이 만든 '명암대조법',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2122996731

5. 신세계역, 2023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6. https://blog.naver.com/artehistory/222949316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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