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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an 17. 2023

겸손 vs 겸허

비슷 다른 궁금한 단어 s

인간관계나 에티켓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겸손과 겸허다. 분명히 다른 단어인데  막상 사용하려면   헷갈린다. 사전에 의하면,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다. 겸허(謙虛)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영영사전에서도 ‘humility’와 ‘modesty’는 구분하여 쓴다기보다는 혼용되고 있다. 다만, humility은 ‘태도’의 의미가 강한  겸손에, modesty는  ‘스스로’에 방점을 두는 겸허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두 단어  사이에는 어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까?

그림=최송목

먼저, 겸손과 겸허는 시선 방향이 다르다. 겸손은 시선의 대상이 타인이지만, 겸허는 본인 자신이다. 겸손은 타인을 의식하는 태도지만, 겸허는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며 낮추고 비우는 태도이므로 타인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겸손은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객관적 기준으로 에티켓이나 예절에 가깝고, 겸허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주관적 가치의 기준으로 신독(愼獨)이나 성찰에 가깝다.  

    

두 번째 차이는 양심의 작동 여부다. 겸손은 외부적인 표현이므로 선한 마음 없이도 연극하듯 충분히 가식적 표현이 가능하다. ‘저 사람 참 겸손해 보인다’라고 할 때 그가 진정으로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을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그의 외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있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가 내적으로 선한 양심을 가졌는지 오만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본인만 알 수 있다. 반면, 겸허는 스스로 낮추고 비우는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과 양심 등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한다.

     

참고로, 성경에서 ‘겸허(modesty)’는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경계 내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권한이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겸허는 순박하거나 사람이 순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겸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어 ‘아이도스(Aidos)’는 도덕적 의미로 사용될 경우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견해 혹은 자신의 양심을 중요시하고 받들어 존중한다는 개념을 표현하는 말로써, 부끄러움, 자중심, 도의심, 중용, 절도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즉, 아이도스라는 단어에는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도덕적 거부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겸허’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즉, 허세, 주제넘음, 허식, 자만 및 뽐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특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거나, 자신을 보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보거나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또는 자신의 지위나 인맥을 배경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강하게 주장한다거나 한쪽을 다른 쪽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교만으로 우쭐대는 일을 조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겸허는 옷차림이나 몸치장과 관련하여 사용되어, 과시적인 옷차림이나 자신의 재력에 주의를 끄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다.     

 

셋째,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겸손은 상대방 힘의 강약을 의식하는 태도지만, 겸허는 본인 스스로의 근원적 불완전성과 능력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마음이다. 겸손이 외적으로 꾸미는 태도라면, 겸허는 스스로 내면을 살피고 비우고 지우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의 마음이다. 겸손의 본질은 외면적 태도지만, 겸허의 본질은 자기 객관화와 끊임없는 자기 탐구다. 겸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주체는 상대방 외부지만, 겸허는 본인 스스로가 내부기준을 정하여 행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심판이고 주체다.     


그래서 겸손은 강자의 스탠스다. 특히 성공한 사람에게는 필수 미덕이다. 따라서, 약자에게 겸손이라는 말은 사치일 수 있다. 힘 있는 자, 강자가 자신을 낮추어 약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려는 태도가 겸손이다. 강자가 자신을 더 높이거나 위에서 아래로 상대를 대하면 ‘교만’이 되고, 약자가 자기를 의도적으로 높이면 ‘허풍’이 된다. 낮은 자가 자기를 더 낮추면 ‘비굴’이 된다.      


그러므로 겸손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한 용어가 아니다. 강하고, 지적이고, 권력 있고, 능력 있는 자들에게 부여된 특권적 언어다. 예컨대, 국회의원, 사장, 회장, 권력자, 지도자들이 필요에 의해 사용여부가 결정되는 덕목이 ‘겸손’이다. 상대적으로 말단 직원, 종업원, 일반서민에게 ‘겸손’은 극히 제한적인 용어다. 적어도 힘(완력, 지식, 권력, 능력 등)의 시각으로만 봤을 때 그렇다. 한마디로 ‘겸손’은 충분한 자리나 위치에 있는 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단어이고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림=최송목

넷째, 통제 가능성이다. 겸손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눈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권위나 힘으로 강제할 수 있으므로 통제가 가능하다. 청소년들의 공손한 인사법, 에티켓 등 예절 교육이 ‘겸손’의 강제성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면 겸허는 내면의 자율적 동기가 주동력이므로 강제하기도 어렵고 통제라는 말보다는 자제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래서 겸손은 자기의 필요나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선택할 수 있으며 많은 경우 강제할 수도 있다. 돈, 권위, 지위, 관습, 분위기, 여론 등에 의해서다. 예컨대 정치인들이 TV인터뷰나 공식석상에서 90도 인사하고 사과하고 낮추는 태도 등 마음에도 없는 공손함 대부분은 겸손에 해당한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나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겸손만 있고 겸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이 세상사람 모두의 미덕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예절, 에티켓과 밀접한 연결성 때문이다. 돈 많은 재력가, 정치 권력자가 허리를 굽히면 겸손하다고 칭송하지만, 말단직원이 허리를 굽히면 당연한 처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수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하는 이들에게 겸손은 훌륭한 처세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겸허가 없는 겸손만으로도 충분히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겸손과 겸허는 네 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특성 내지는 차이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 서로 밀접한 관련성도 있다. 성경(신세계역, 빌립보 2:3)에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중심적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의 대표적 모델이다. 겸손은 교만이나 거만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며 “자기를 낮추는 정신”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겸손한 사람은 대개 겸허하며,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이룬 일을 올바로 평가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고, 타인의 제안이나 새로운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렇듯, 겸손은 우리들의 인간관계 대부분에서, 보이는 태도와 보이지 않는 진정성이라는 자기장의 프레임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니면서 작동되고 있다. 반면, 겸허는 그 속을 내밀하게 관찰하지 않은 이상 잘 파악도 어렵고, 자기 수양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개념이다.

     

‘겸허‘의 ‘虛’(허)는 스스로 ‘비운다’는 의미로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조차도 부인(否認)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나는 사라지고 상대만 남게 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사실상 겸손과 겸허는 구분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하나가 된다. 이때 ‘비워진’ 무심의 경지에 이른 겸허한 (내부) 마음은 겸손이라는 (외부) 태도를 통해서 하나의 내외 합체가 되어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진심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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