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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vs 겸허

비슷 다른 궁금한 단어 s

by 최송목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어 중 하나가 겸손과 겸허입니다. 사전에서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으로, 겸허(謙虛)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미묘한 지점에서 헷갈립니다.


영영사전에서 humility는 ‘태도’의 의미가 강한 겸손에, modesty는 ‘스스로’에 방점을 두어 겸허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실사용에서는 ‘humility’와 ‘modesty’는 명확히 구분한다기보다는 혼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어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까요`?

그림=최송목

먼저, 겸손과 겸허는 시선 방향이 다릅니다. 겸손은 시선이 타인이지만, 겸허는 본인 자신입니다. 겸손은 타인을 의식하는 태도지만, 겸허는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며 낮추고 비우는 태도이므로 타인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지요. 따라서 겸손은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객관적 기준으로 에티켓이나 예절에 가깝고, 겸허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주관적 가치의 기준으로 신독(愼獨)이나 성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허는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잘 파악하기도 어렵고, 자기 수양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생길 수 없는 개념입니다.

두 번째 차이는 양심 작동의 여부입니다. 겸손은 외부적인 표현이므로 선한 마음 없이도 연극하듯 가식적 표현이 가능합니다. ‘저 사람 참 겸손해 보인다’라고 할 때 그가 진정으로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을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보이는 그의 겸손한 ‘태도’를 보고 있을 뿐이지요.


성경에서도 겸손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빌립보 2:3)에서는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중심적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때 겸손은 교만이나 거만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며 “자기를 낮추는 정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겸허(modesty)’는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경계 내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에게는 권한이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겸허는 순박하거나 사람이 순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겸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원어 ‘아이도스(Aidos)’는 도덕적 의미로 사용될 경우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견해 혹은 자신의 양심을 중요시하고 받들어 존중한다는 개념을 표현하는 말로써, 부끄러움, 자중심, 도의심, 중용, 절도 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아이도스라는 단어에는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도덕적 거부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허’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즉, 허세, 주제넘음, 허식, 자만 및 뽐냄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특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거나, 자신을 보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보거나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또 자신의 지위나 인맥을 배경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강하게 주장한다거나 한쪽을 다른 쪽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교만으로 우쭐대는 일을 조심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셋째, 겸손과 겸허는 판단 주체가 다릅니다. '저 사람 겸손하다, 건방지다'라고 할 때, 판단하는 기준과 주체는 상대방이지만, 겸허는 본인 스스로 정해 놓은 주관적 자기 기준에 따를 뿐입니다. 즉, 본인이 심판이고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겸손은 상대방 힘의 강약을 의식하여 상대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는 태도지만, 겸허는 본인 스스로의 근원적 불완전성과 능력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강자의 스탠스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공한 사람에게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미덕이지요. 이를 뒤집어 적용하면, 약자에게 겸손은 사치입니다. 즉, 힘 있는 자, 강자가 자신을 낮추어 약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려 할 때 가지는 태도가 겸손이라는 거지요. 강자가 자신을 더 높이려 하거나 위에서 아래로 상대방을 대하면 ‘교만’이 되고, 약자가 자기를 의도적으로 높이거나 강자 행세를 하면 ‘허풍’이 됩니다. 또 약자, 낮은 자가 자기를 한껏 더 낮추어 상대를 대하면 ‘비굴’이 되지요.


그러므로 겸손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한 태도가 아닙니다. 강하고, 지적이고, 권력 있고, 능력 있는 자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적 태도 내지는 덕목입니다. 적어도 힘(완력, 지식, 권력, 능력 등)의 시각으로만 봤을 때 그렇습니다. 예컨대, 국회의원, 사장, 회장, 권력자, 지도자들이 필요에 의해 사용여부가 결정되고, 그들이 '겸손'하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칭송합니다. '저분 참 겸손하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 종업원 참 겸손하다'라고 아무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냥 직원, 종업원, 일반서민에게 ‘겸손’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한마디로 ‘겸손’은 충분한 힘을 가졌거나 좋은 자리에 있는 자가 선택할 수 있는 스텐스이고 특권이며 표현입니다.

그림=최송목

넷째, 통제 가능성입니다. 겸손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태도에 치중하고, 이는 권위나 힘으로 강제할 수 있으므로 제삼자가 통제가 가능합니다.


청소년들의 공손한 인사, 에티켓 등 예절 교육이 ‘겸손’의 강제성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면, 겸허는 보이지도 않고 내면의 자율적 동기가 주동력이므로 스스로 낮추고 비우는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과 양심 등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따라서 겸허에는 강제라는 말보다는 스스로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그래서 겸손은 자기의 필요나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선택할 수도 있고 돈, 권위, 지위, 관습, 분위기, 여론 등에 의해서 강제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정치인들이 TV인터뷰나 공식석상에서 90도 인사하고 마음에도 없는 공손함 대부분은 강제된 겸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켜보는 대중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인위적 억지 테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이 세상사람 모두의 미덕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예절, 에티켓과 밀접한 연결성 때문이다. 돈 많은 재력가, 정치 권력자가 어쩌다 한 번 허리를 굽히기라도 하면 '겸손하다'라고 칭송하지요. 때로는 황송해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래서 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이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겸손'보다 더 훌륭한 처세 도구는 없습니다. 유명 정치가, 가수, 텔런트, 스포츠 선수 등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인기와 겸손한 태도는 거의 비례합니다. 겸허가 없는 겸손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상 살펴본 것처럼 겸손과 겸허는 서로 다른 차이 내지는 특성을 지니지만, 한편으로 밀접히 수렴하기도 합니다. ‘겸허‘에서 ‘虛’(허)는 스스로 ‘비운다’는 뜻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조차도 부인(否認)하는 것이지요. 자아가 사라지고 상대만 남게 되는 겸허의 극점 ‘虛’(허)에 이르게 되면 사실상 겸손과 겸허는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워진 겸허와 한없이 낮아진 경지의 겸손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수렴하는 것이지요. 겸손과 겸허는 분명 다른 속성이고 다른 출발점이지만, 이처럼 때로는 상호 자기장(磁氣場)이 작동하여 수렴함으로써 하나로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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