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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Jun 28. 2024

졸속(拙速)과 우직(迂直)

손자병법

지금은 속도의 시대다.  양성희 칼럼니스트는 이를 두고 ‘거대한 가속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유튜브·OTT 영상의 1.2~1.5배속 시청을 한다거나 건너뛰기를 하며 보거나, 유튜브 요약본 시청만으로도 ‘그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시대다.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건 작품의 훼손이라 개탄하지만, 볼거리가 차고도 넘치니 어쩔 수 없다. 콘텐츠 소비도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시성비’가 중요해진 것이다. 노래를 130~150% 정도 빠르게 돌리는 ‘스페드 업(sped up)’ 버전도 인기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1분 내외 쇼트폼 콘텐츠에 평균 3분 정도의 음악을 맞추다, 빨리 돌린 버전이 각광받게 됐다. 이에 더해 일본에서는 책을 10분 분량으로 요약하는 모바일 독서 앱까지 인기를 끌며 ‘시성비’에 준하는 ‘타이파(타임 퍼포먼스)’라는 말이 나왔다.      


생활 속도 전반도 빨라지고 있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1950년대보다 훨씬 빠르게 말하고, 도시인들은 20년 전보다 10% 빨리 걷는다. 미국의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은 단 3분에 불과하다.


 코넬대 심리학과 제임스 커팅 교수의 연구에서 1920년대 12초이던 영화 원샷의 길이는 2010년대에는 4초, 2020년대에는 2.8초로 줄었다. 지루함을 견디는 시간은 짧아지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캐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2000년 12초였던 집중력은 몇 년 만에 8초로 3분의 1이 떨어졌다.    

 

손자병법에 ‘졸속(拙速)’이라는 말이 나온다. 작전 편에 ‘병문졸속(兵聞拙速), 미도교지구야(未睹巧之久也)’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어설프지만 속전(速戰)하라는 말은 들었어도, 교묘하게 오래 끌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다소의 문제가 있더라도 속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전쟁을 치르자면 인력, 물자, 전략적 상황 등 총력전에서 머뭇거리고 시간을 끄는 것만큼 비용지출이 되므로, 속전속결로 빨리 전투를 끝내야만 사상자도 줄이면서 승리할 수 있으니 손자가 그토록 강조한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속도개념과 딱 맞아떨어지는 개념이다.     

 

한편, 손자병법 군쟁 편(軍爭)에는 ‘빠른(直) 길을 돌아가는 것(迂)도 지혜(計)’라고 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실려 있다. ‘병문졸속(兵聞拙速)’과 대비하면 모순을 이루는 문장이다. 얼핏 보기에 정반대의 주장을 하나의 책에 같이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지혜가 숨어 있다.      


우리는 보통 반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니 손해라 생각한다. 그래서 쉽게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런 우회는 대체로 타의에 의해 강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상부의 명령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직선길, 빠른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끔은 우회의 손해가 직진의 이익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올 때도 있다. 급하고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1등이 오히려 좀 더 빨리 절벽에 도달하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논어》 자로 편에 나오는 욕속부달(欲速不達)은 ‘일을 속히 하려고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빠른 성공은 빠른 몰락을 동반하거나 다른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너무 잘하려고 기교를 부리다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욕교반졸(欲巧反拙)이나 바둑 격언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도  일부 맥을 같이 한다. 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우직지계’와  맥이 닿아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사람은 앞으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니 살면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짜증부터 내기보다는 일단 감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손해이고 늦어진다고 여겨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일 수도 있고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란 희망으로 말이다. 졸속과 우직은 정반대의 다른 말이지만, 시소의 양 끝단처럼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게 우리네 삶이다.    

 

<참고인용>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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