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페라공연, 유명 연주회 가서도 앉아서, 심지어는 의자를 거만하게 뒤로 젖히고 주인공, 배우들을 보고 웃고 박수를 친다. 손님이니까, 구경 왔으니까 그렇다. 아마도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다르다. 판사가 입정 하면 일어선다. 법원 경위가 “판사 입정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앉아 주십시오 “라고 친절하게 강요하는 이 말에 대부분의 방청객은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일어섰다 앉았다 한다. 안 일어서면 무슨 죄라도 짓는 거 같아서, 끌려 나갈 것 같아서 일어선다.
1994년 이전에는 “일동 기립”, “착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피고, 원고, 검사, 변호인 등 당사자도 아니고 단순 방청객일 뿐인데도 그래야 한다. 물론 지금은 앉아 있어도 위반이라고 경위에게 끌려 나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중압감, 무거운 분위기 이게 과연 정상인가?
최근 서울신문 백서연 기자가 이 문제를 중심으로 취재한 기사 사례로 살펴보자. 2024년 4월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 취재기록이다. 이날 재판이 시작되기 전 한 방청객은 경위로부터 “다리를 꼬지 마라”라고 지적받았다. 재판장은 “방청석에서 턱을 괴지 말아 달라. 방청 태도를 되도록 지적하지 않으려 하는데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보듯이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라고 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주장이 엇갈린다. 하나는 ‘사법부에 대한 존중을 위해 엄격한 법정 질서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시대가 변한 만큼 유연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판부 입정 전 기립을 하거나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는 규정은 과거에 존재했던 ‘바람직한 재판운영에 관한 방안’이라는 법원 예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립은 엄정한 의미를 가진 재판이 시작되는 데에 대한 예의로서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어진 미풍이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송대리인 등 관계자의 복장이 법정의 품위를 해할 정도라고 판단되면 적절히 주의를 촉구함이 좋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지난 2008년 폐지됐지만 현재까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재판부 입정 전 기립은 (행사 등의) 개회식에서 서로 인사하는 것과 비슷한 관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6년 전 사라진 예규를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고, 재판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 방청객의 자세나 행동까지 제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논란에서 우리는 판사에 대한 권위와 법정의 권위를 분리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법정에서 다루는 사건 대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엄중한 사안으로 그 보상, 증명, 판단을 하는 공간이므로 웃고 떠들고 다리를 꼬고 껌을 씹는 행위 등은 지양하는 엄중한 법정 분위기는 어느 정도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판사가 입장 시에 기립하는 것과 같이 판사 개인에 대한 권위와 법정 권위를 동일시되면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관과 그 기관의 사람을 동일시하여 일어난 폐단의 대표적인 것이 ‘짐은 곧 국가다’라는 개념이다. 국가와 최고 권력자가 동일시되어 독재가 시작되었고, 입법부 국회를 등에 업고 면책특권 등 186가지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의 일탈도 입법기관과 국회의원 본인을 동일시하여 생겨난 폐해다. 거인의 어깨 위 난쟁이를 연상케 하는 ‘국회의원이 곧 국회다’라는 의식이다. 이 대목에서 사법부는 ‘판사가 곧 법원이다’라는 말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
다시 원점에서 되짚어 보자. 우리 방청객은 변호인도 죄인도 검사도 당사자도 아니다. 그냥 방청객일 뿐이다. 국어사전에도 ‘방청객’ 뜻풀이로 ‘정식 성원이 아니거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 회의, 토론, 연설, 공판(公判), 공개 방송 따위에 참석하여 들음’으로 되어 있다. 방(傍). 청(聽). 객(客) 말 그대로 손님(客)이다. 그렇다면 원고, 피고, 대리인 등 당사자만 일어서면 될 일 아닌가?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로 법정의 ‘존엄함’, ‘예의’를 내세우지만, 과연 지금 법원이 그럴 자격이나 있는가? 과거 지역유착비리 등의 폐해를 일으킨 향판(鄕判), 막말 판사,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판사, 최근에는 기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부장판사가 구속되는 일이 생기면서 법조계 윤리불감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힘없는 시민들은 기소만 되어도 벌벌 떨면서 노심초사하는데 반해, 힘 있는 정치권력자, 일부 교수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심지어 대법원 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사례는 사법부의 권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법원의 권위는 사실 그들 스스로 무너뜨려놓고 애먼 시민들에게만 일없이 앉았다 일어서기의 하찮은 존엄을 강요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은 이보다 더한 권력기관인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해도 일어서지 않는다. 기자들도 방청객도 앉아서 질문하고 듣는다. 심지어 국회의원들은 가끔 야유도 하고 퇴장도 한다. 그런데 유독 법정에서 이렇게 시민을 장기판의 졸로 막 대하는 이유가 법정의 존엄함, 예의로는 마뜩잖다. 대통령, 국회의원 위에 판사는 아닐 텐데, 왜 유독 법정만 갈라파고스화하여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걸까?
어느 사이엔가 국민 위에 국회가 자리 잡는가 싶더니 사법부가 그 모든 권위를 판단하는 ‘권력 위 권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각종 정치 권력자 재판, 탄핵 결정, 부정 선거여부로 당락 결정이 되다 보니 법원 손에 권력자들의 명줄이 달린 탓일 것이다. 과거사건을 판단하는 과거 지향적 기관이 미래지향적 기관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론적으로는 국가의 권력은 3권 분리되어 서로를 견제하는 모양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 사라졌다. 사법부는 자체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겨도 셀프판결로 솜방망이 처결이 관행처럼 이어지다 보니 끈 풀린 망아지 모양으로 사법부의 일탈이 잦아지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일 법정에서 반복되고 있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 “앉아 주십시오 “라는 반강제적 존경과 존중의 관행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사실 큰 사안도 아니다. 판사들조차도 아마 늘 하는 관행으로 존경받는다는 기분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법정에 임하는 방청객에게는 일종의 불쾌감과 함께 스트레스 가득이다. 이제, 그냥 법정경위가 ”판사 입정하십니다 “에서 말을 멈추어주면 어떨까? 앉고 서고는 방청객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법원의 반강압적 존중에서 방청객의 자율 존중으로 가닥을 잡아보는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직원이 “Bundesverfassungsgericht!(연방헌법재판이 열립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뉴스에서 도배되고 있는 국회의원. 정치 권력자들의 저급한 행태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요즈음 우리 국민들에게 그나마 3권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의 ‘작은’ 국민 존중을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1. 백서연기자, [생각 나눔] 판사 입정시 기립 어떻게 생각하나요 https://www.seoul.co.kr/news/society/law/2024/04/28/20240428500078
2. 최서윤기자, [Y수첩] 왜 판사 앞에서 기립해야 하나요? https://www.economytalk.kr/news/articleView.html?idxno=134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