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作心)과 결심(決心)

지신인용엄 (智信仁勇嚴), 지이불행, 지시미지 (知而不行,只是未知)

by 최송목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음을 고쳐먹는다. 2026년의 첫 달력이 펼쳐지는 순간, 어제까지 미뤄두었던 다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그래서 새해는 언제나 ‘희망의 계절’인 동시에 ‘다짐의 계절’이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이 의식들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정말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일까. 아니면 마음을 먹는 일은 쉽게 여기면서도, 그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는 일을 어려워하기 때문일까.


국어사전에서 작심(作心)은 “마음을 단단히 먹음”으로 풀이된다. 한자를 뜯어보면 지을 작(作)에 마음 심(心)이다. 말 그대로 마음을 ‘만드는’ 행위다. 이는 아직 행동 이전의 설계 단계로, 마음속에 어떤 상태를 그려보는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가능성이 열려 있고 여러 선택지가 공존하기에, “올해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방향성은 있으나 이를 끝까지 밀어붙일 강제성은 부족하다. 작심이 쉽게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결심(決心)은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이다. 결단할 결(決)에는 막힌 것을 터뜨리고 물길을 가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심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망설임을 끊고 하나의 방향으로 마음을 확정하는 행위다.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선택지들을 과감히 내려놓는 일이다. 그래서 결심은 작심보다 훨씬 무겁다. 마음을 만드는(作) 일이 아니라, 마음을 자르는(決) 일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말의 쓰임에서도 드러난다. “금연을 작심했다”보다는 “금연을 결심했다”가 더 자연스럽다. 작심이 의지의 생성이라면, 결심은 행동을 전제로 한 의지의 확정이다. 그래서 작심은 중도에 포기하거나 번복해도 티가 나지 않지만, 결심은 번복하거나 중지하면 책임과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대비는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에서 장수의 자질을 논하는 대목에서도 흥미롭게 해석될 수 있다. 손자는 장수의 덕목으로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을 꼽았다. 여기서 작심과 결심은 각각 ‘용(勇)’과 ‘엄(嚴)’의 영역에 대응한다. ‘용’은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기개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작심’의 에너지다. 그러나 마음먹는 용기만으로는 전략을 현실로 만들 수 없다. 스스로 세운 규율을 단호하게 지켜내는 ‘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자르고, 자른 뒤에도 흔들림 없이 그 선을 지켜내는 ‘엄격함’이 있을 때 비로소 작심은 완성된다


왕양명은 지행합일을 말하며,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알지 못한 것과 같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지이불행, 지시미지(知而不行,只是未知)다. 성경 역시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야고보서 1:22)라며, 실행이 배제된 다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임을 경계한다. 결국 작심이 ‘무엇을 아는 단계’라면, 결심은 그 앎을 ‘삶으로 증명하는 단계’인 셈이다.


우리 앞에는 2026년이라는 공평한 시간이 놓여 있다. 매년 이맘때면 달력은 말없이 질문을 던진다. 지난 한 해 동안 만들어만 두고 방치했던 수많은 ‘작심’들 가운데, 올해는 무엇을 선택해 ‘결심’으로 남길 것인가.


인생은 결국 내가 선택한 결심들이 그려가는 시간의 궤적이다. 올해도 작심만 하고 설계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망설임을 덜어내고, 선택한 결단 위에 실행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한 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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