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전략, ‘안녕하십니까?’

백전불태(百戰不殆)

by 최송목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을 건넨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뜻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인사는 단순한 예의나 덕담이 아니다. 치열한 질문이다. ‘오늘도 무사한가, 오늘도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는가’를 묻는 가장 간결하고도 오래도록 이어져 온 생존 점검표다.


‘안녕(安寧)’이라는 말은 본래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뜻한다. 흥미로운 점은,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불태(不殆)’와 그 의미가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불태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패배하지 않는 상태, 더 정확히 말하면 위태롭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한자어이고 전쟁 용어로 알려져 있다 보니 낯설게 느껴질 뿐, 우리가 매일 묻는 “안녕하십니까?”는 사실상 “지금 위태롭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전쟁터의 언어가 일상의 인사말로 변모해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불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 일상 속 선택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길을 가다 이삿짐을 나르는 사다리차 작업 현장을 만났다고 하자. 그대로 통과할 수도 있고, ‘작업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믿고 지나칠 수도 있다. 서둘러 빠르게 직진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불태에 가까운 선택은 우회다. 위험을 감수하며 통과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위험 자체를 설계에서 제거하는 것이 불태다. 불태는 대응의 기술이 아니라 회피의 지혜다.


불태는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순간에만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부상을 당하면 경기는 끝난다. 실력과 의지가 아무리 뛰어나도,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불태는 ‘이기는 전략’이 아니라 ‘지지 않는 조건’에 가깝다.


손자병법에는 원수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을 때,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하면 서로 협력하게 된다는 비유가 나온다. 오늘날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 정상들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역시 ‘오월동주(吳越同舟)’에 가깝다. 겉으로는 공존을 말하지만, 실제 목적은 화해가 아니라 생존이다. 타협은 수단일 뿐, 최종 목적은 각자의 위태로움을 관리하는 데 있다.


국가 간의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가장 밀접한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도 '불태'의 원리는 생존의 핵심이 된다. 부부싸움에서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누가 옳은지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다. 싸움에서 이겨도 관계가 무너지면 패배와 다를 바 없다. 불태는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가 붕괴되는 선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지혜다.


이 논리는 사업과 경영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경영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없는 기업은 정체되고, 도전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른다. 문제는 실패가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실패가 치명상이 되느냐다. 한두 번의 잘못된 판단이 곧바로 회사의 존망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도전이 과한 것이 아니라 구조가 취약한 것이다. 불태의 관점에서 본 경영이란, 모든 의사결정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일부 결정이 틀려도 전체가 침몰하지 않도록 '방수벽'을 설치하는 구조적 설계의 힘이다. 실패를 전제로 하되, 실패가 죽음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 것—그것이 지속 가능한 경영의 조건이다.


우리는 흔히 ‘백전백승’을 말한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이 말한 것은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며, 적도 나도 모르면 매번 전쟁이 위태로워진다. 결국 핵심은 단기적인 승률이 아니라, 어떤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 안정성(Stability)이다.


다시 처음의 인사말로 돌아가 보자.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기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 즉 지금 위태롭지 않은가를 말이다. 사람도, 조직도, 국가도 한 번의 패배가 아니라 한 번의 ‘붕괴’로 무너진다.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붕괴는 소리 없이 시작된다. 당신은 오늘, 진정으로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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