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바람에도 살랑
센 바람에도 살랑
아무 바람에나 쉬 흔들리는 네는 팔랑귀
강하면 굽히고 약하면 으스대는 게 세상인데
너는 굽히는 거야 으스대는 거야
실바람 센바람 산들바람
모두 지나갔는데
머문 흔적 하나 없구나
티 조금만 남겨뒀으면 향이라도 맡을 텐데
꼿꼿하고 단단하니
그 속을 가늠할 수 없구나
소중한 보물이라도 품었는가
큰 비밀이라도 숨겼는가
달콤한 사탕이라도 머금었는가
기대하고 들어갔더니
아무것도 없구나
공
허망하구나
텅 비었구나
뻥 뚫렸구나
하기사 그 속에 뭔가 꽉 차 있었다면
그 센바람 모진 바람 어찌 견뎠을꼬?
아마도 부러지거나 터지고 말았을 터이다.
온갖 생각 오만 고민 가득 찬
내 머리 속도 네 같았으면 좋겠다
매일 쌓는 되돌이표 삶
열심 열심 성실 성실
그렇게 꽉 차고 오르기만 하는 일상
지나가는 실바람 앞에 흔들거리는
빈속 대나무 네가 부럽구나
버리듯 보내면 모두 지나가는 것을
흔들리는 척 보내버리면 될 것을
나는 왜
비우지 못하고
모으고 머금고 채우기만 하고 있을까
비우면 날라 가버릴까 두려움
한번 가면 다시 못 올까 미련
채우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공백의 불안
그런 잡동사니에
내속은 하루도 빈 날이 없어
안과 밖의 비움과 단단함
네는 둘 다 가져 좋겠다
반들반들 윤기마저 흐르네
평생 부러워만 하다 가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