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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Oct 10. 2021

대나무

개시 5

실바람에도 살랑

센 바람에도 살랑

아무 바람에나 쉬 흔들리는 네는 팔랑귀

강하면 굽히고 약하면 으스대는 게 세상인데

너는 굽히는 거야 으스대는 거야


실바람 센바람 산들바람

모두 지나갔는데

머문 흔적 하나 없구나

티 조금만 남겨뒀으면 향이라도 맡을 텐데


꼿꼿하고 단단하니

그 속을 가늠할 수 없구나

소중한 보물이라도 품었는가

 비밀이라도 숨겼는가

달콤한 사탕이라도 머금었는가


기대하고 들어갔더니

아무것도 없구나

허망하구나

텅 비었구나

뻥 뚫렸구나


하기사 그 속에 뭔가 꽉 차 있었다면

그 센바람 모진 바람 어찌 견뎠을꼬?

아마도 부러지거나 터지고 말았을 터이다.

온갖 생각 오만 고민 가득 찬

내 머리 속도 네 같았으면 좋겠다


매일 쌓는 되돌이표 삶

열심 열심 성실 성실

그렇게 꽉 차고 오르기만 하는 일상

지나가는 실바람 앞에 흔들거리는

빈속 대나무 네가 부럽구나


버리듯 보내면 모두 지나가는 것을

흔들리는 척 보내버리면 될 것을

나는 왜

비우지 못하고

모으고 머금고 채우기만 하고 있을까


비우면 날라 가버릴까 두려움

한번 가면 다시 못 올까 미련

채우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공백의 불안

그런 잡동사니에

내속은 하루도 빈 날이 없어


안과 밖의 비움과 단단함

네는 둘 다 가져 좋겠다

반들반들 윤기마저 흐르네

평생 부러워만 하다 가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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