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밥상 문간 이문수 신부님이 청년에게 전하는 말
지난 4월, tvN 예능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블록'에서 청년들을 위해 '어쩌다 사장'이 된 특별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김치찌개 1인분에 3천 원, 공깃밥은 무한리필. 청년문간을 방문하는 청년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담아 밥상을 차린다는 글쓴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창구가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꺼내기까지 연습과 용기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어쩌면 누군가가 차려준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이 더 큰 마음의 나눔일지도 모른다. 지친 청년들에게 "동정"과 "힘내"라는 말 대신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다.
저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시장에서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에 장사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만 4년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부인 제가 식당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그보다 2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5년 여름, 서울의 어느 고시원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뉴스를 통해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집에 찾아간 지인들에 의해 발견되는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보시고 가슴을 쓸어내리시던 수녀님 한 분께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끼니를 거르는 청년들이 있구나 하는 자각을 하시며 안타까운 마음에 저에게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서 운영해 달라는 제안을 하셨고, 함께 살고 있는 수도회의 신부님들과 의논하여 우리가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보자고 결정했던 것이죠.
청년 노숙인
식당을 시작하고 5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허름한 차림의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할지 말지 조언을 듣고 싶다며 인터넷을 통해 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멀리 성남에서부터 식당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경상남도가 고향이었던 그는 불교의 스님이 되고자 출가하기 위해 서울로 왔지만 출가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성남에서 9개월 동안 노숙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내심 무척 놀랐습니다. 청년들 중에도 노숙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야 노숙인들 가운데에도 청년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청년을 도왔지만, 고향으로 내려가서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저의 제안에 그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남기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건 동정이 아닌 위로와 격려
그렇다고 저희 식당에 오는 청년들이 모두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께서 식사하러 자주 방문하는 단골 청년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바람에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청년들의 어머니 연배이셨던 봉사자분들은 엄마 같은 마음으로 안쓰러워하셨던 것일 테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주 식사를 하러 왔을 뿐인 그는 불필요한 그분들의 동정(?)에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모든 봉사자분들에게 다시 교육을 해야만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일 것입니다. 저는 저희 식당이 가난한 청년들이 와서 값싼 음식을 먹는 식당으로 비춰지는 걸 극도로 경계합니다. 저희는 청년들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은 청년은 지방이 고향이었고 부모님은 모두 공무원이십니다. 다만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청년밥상 문간’의 직원들이 식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기에 자주 찾았던 것이죠.
부모님과 살지 않고 자취를 하는 모든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합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되도록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하면서 생활비와 용돈을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식당을 하면서 청년들을 만나보니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취업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진로 문제인데 이 역시 취업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취업의 문도 좁은데다가 일자리 간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일할 곳을 찾기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부유해진 나라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낙인감은 이 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 같습니다.
1995년과 2021년의 청년들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제가 옛 시절을 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점은 같아 보입니다. 다만 90년대에는 취업에 대한 걱정이 지금보다 덜했던 것처럼 느낍니다. 지금 청년들의 취업을 위한 노력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모든 청년 세대의 공통점이겠지만 확실히 그 걱정의 크기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더 큰 듯합니다.
줄어든 일자리와 더욱 커진 임금의 격차를 보완해줄 사회적 제도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내 집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주거를 고민하지 않도록 더 분명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만큼 자신감이 얄팍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청년들이 생존을 고민하지 않고 행복을 고민하는 사회가 되려면 기성세대가 더 많이 베풀고 무한 경쟁사회에서 원치 않게 약자가 되어버린 청년들을 위한 제도가 절실합니다. 기성세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말로 청년들을 부러워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고도화된 산업 구조에서 청년 세대는 사회적 약자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제도를 마련하듯이 청년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
엉뚱한 이야기 같습니다만 저는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이라는 에세이를 냈습니다.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식당을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과 겪었던 일들 그리고 그때에 제가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을 글로 정리하면서 저의 청년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고, 어른이라 불리는 지금은 어떤지가 좀 더 보이더군요. 책을 쓰고 있던 지난 여름에도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청년을 만나게 되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을 만나면서 제게서 터져 나온 간절한 외침은 위험하게 벼랑 끝에 서 있지 말고 안전하게 이쪽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지면 누구나 벼랑에 내몰린 심정이 됩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만큼 그것만이 삶의 전부라는 생각에 매몰되기도 하구요. 이것이 아니면 내 인생은 끝장이라는 괴로움에 목이 죄여오기도 합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저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실패라고 부를 겁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다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실패해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루려는 꿈보다 그리고 실패보다 여러분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생을 다 산 것은 아니지만 얼마간 살아보니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모든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해도 행복하기를 더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너무 힘들면 지금의 그 자리를 떠나 소중한 당신을 꼭 지키기를 바랍니다. 많이 힘들고 지치셨다면 제게 연락하시면 어떨까요. 문제를 해결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이문수는
글라렛 선교수도회 소속의 천주교 신부다. 2017년에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에 설립한 ‘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 본 콘텐츠는 청년재단의「리얼리뷰 청년매거진」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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