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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들어간 서점

수필

by 보리


어쩌다 들어간 서점




신호등 앞이다. 맞은편, 고속버스 터미널 2층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소문난 서점’. 몇 달 전 서점주인 사연을 인터넷 기사로 읽은 게 번뜩 기억난다. 반가운 마음에 터미널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일반 서점이 아닌 헌책방이다. 오랜만에 헌책방 냄새를 맡는다. 책꽂이에 빼곡히 들어찬 책들, 겹겹이 쌓인 책탑들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질서 없이 아무 때나 꽂혀있는 듯 보이지만 까닭 없이 널브러져 있는 책은 없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책이 먼저인 가게다. 이게 헌책방 맛이지.


선풍기는 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기둥 벽에 붙었다. 이리저리 느리게 돌아간다. 안온한 풍경이다. 선풍기도 헌책처럼 낡았다. 시원함이 덜하니 바람조차 오래되었을까. 광택이 사라진 무광택의 표지들이 정겹다. 삼십 년은 됨직한 세계문학전집이 모로 자리를 차지한다. 전집 단지에 입주민들은 안녕한지 궁금하다. 어린 왕자는 어른이 되었을까, 작은 아씨들은 작은 할머니들이 되었겠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몇몇 스타들은 생치기투성이가 되어 책 모서리가 무질러진 채 안식에 들어갔다.


구석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다. 투병 중이라는 기사를 입증하듯 걸음걸이도 무지근해 보여 부자연스럽다. 어르신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말을 건네니 반가워하신다. 오랜 시간 파킨슨으로 고생하신다는 것도 조심스레 알은척했다. 꼼꼼히 읽었다고 설핏 웃으신다.


허영만의 ‘식객’이 쌓여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딸이 무척 좋아하는 만화책이다. 정가에서 절반 값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겨 책들을 살폈다. 이가 좀 빠져있다. 없는 번호 책이 아쉽긴 하여도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으면 상관없겠다고 했다.


“이어지지 않아요, 다 다른 이야기라서 괜찮아요, 수필은 원래 그래요.”


수필? 아뿔싸! 식객을 수필로 어르신은 들었다. 수필이 아니고 식객을 여쭸다고 고쳐 말하기도 뭣했다. 더구나 수필이라 했다.


“수필이요? 제가 요즘 수필 쓰고 있어요.”


“아! 그래요, 나도 수필 써요. 시로 등단이 되었지만 수필집이 먼저 나왔지요.”


어느새 수필 이야기로 주파수가 맞추어졌다. 한 권 정도는 사야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 흘러버렸다. 진즉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집었다. 계산하러 갔더니 책방 주인은 A3 크기 종이 두 장을 건네준다. 서툰 솜씨로 신문을 복사한 모양이다. 활자는 그나마 잘 보이는 어르신 수필 두 편이다.


내일모레 팔순이 되는 어르신은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뇌를 활용하라는 사후기증을 약속했다. 당신은 고통으로 쇠잔해져 가는데 그런 결심을 하였다니 거룩한 뜻에 숙연해졌다. 어르신처럼 책 속에 60년 정도 묻혀 지내면 지식을 넘어 사람이 지닐 인품도 갖추게 될까.


담소를 나누면서 그분의 수필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은 전염되어 나에게 따듯한 온기로 전해진다. 좋은 수필 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격려하신다. 써둔 수필을 가지고 오면 읽고 봐준다고도 하신다. 얼추 부모님 연세와 비슷하니 딸 같은 후배에게 하는 말씀이리라. 삼십 년을 더 사신 분이 수필을 귀히 여겨 권하니 절로 마음이 더 기운다. 뒷날, 딸은 한달음에 서점을 찾아가 어제 엄마가 식객을 보고 갔노라 이야기를 드렸단다. 이를 어쩌나, 어르신은 그새 어제가 가뭇해졌다. 나와의 만남이 뭉텅 지워진 듯하다. 그저 웃지요, 할 밖에.


헌책방 가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동안 가보았던 곳들이 차례차례 다가온다. 갓 구워낸 책들보다 손때 묻고 색 바래진 책들이 그저 좋았다. 집에서 걸어가도 가뿐한 거리에 헌책방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축복이었다. 한번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몇 시간이 금세 가버렸다. 헌책방 안에서는 모든 게 과거처럼 보여도 시간만큼은 얄짤없이 현재로 흐르는 모순이 있다.


가지고 온 월든 책에는 원래 주인 필체가 여기저기 손자국으로 남았다. 구입시기와 주인 이름도 박혀있다. 책 임자가 바뀌었는데 내 이름이 아니다. 예전 이름 밑에 내 이름과 날짜를 기록하면 이 책의 등기부등본이 되려나. 제법 곧은 선으로 문장에 줄을 그은 흔적도 있고 읽다가 생각을 적어둔 페이지도 보인다. 이름도 알고 필체도 알지만 이게 전부다. 영원히 맞출 수 없는 퍼즐 조각이다


어쩌다 들어간 서점에서 우연은 연이어 엮였다. 인터넷 기사를 본 우연이 신호등에서 서점이 눈에 들어온 우연으로 연결되었다. 딸이 좋아하는 식객이 수필로 둔갑하는 웃지 못할 우연으로, 서점주인과 내가 수필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대화가 이어지는 우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무시로 갈만한 헌책방이 생긴 것만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르신의 건강만 평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가끔 들렀을 때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다. 복사된 똑같은 수필을 처음인 양 건네도 흔쾌히 받을 수 있다. 자리만 지켜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오래된 책방은 다닥다닥 붙어 졸고 있다가도 펼치면 후두둑 쏟아질 활자들이 가득하다. 책 속은 오롯이 명징한 진리 그대로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에서 명을 떼어버리지 못한 채 꽂혀있어도 주눅들 까닭이 없다. 과거와 현재 언저리에 있는 헌책방은 ‘명’의 퇴출 소식은 통보받은 바 없다. 여전히 선풍기를 중심으로 아무 탈 없이 ‘명’까지 궤도를 돌고 있다. 식객을 수필로 다르게 들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이야기가 이어나가는, 헌책방은 7시까지 어김없이 열린 문이다.




[에세이문학 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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