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 이안 동시들

동시

by 보리

모두들 처음엔


대추나무도 처음엔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꽃도 시원찮고 열매도 볼 게 없었다


암탉도 처음엔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횃대에도 못 오르고 알도 작게만 낳았다


모두들 처음엔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조금씩 시원찮고 조금씩 서투르지만


어느새 대추나무는 내 키보다 키가 크고

암탉은 일곱 식구 거느린 힘센 어미 닭이 되었다.












뭐라고?


?


귀가 잘 안 들릴 때 사람들은

귀 가까이 손을 갖다 대고

귀 하나를 더 만들지

이렇게

??











모과나무 달


모과나무에서

쿵!

달이 떨어졌어


노오란,


바람에 긁힌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달빛 향


노오란,











충주시립도서관 옆 잔디밭 구석진 자리에 새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가 앉아 있다

날개를 아주 부드럽게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깃을 다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먼 곳으로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그 새 곁으로

나는 조용조용 다가갔다

눈치를 챘는가 새가 날개를 접는다

나는 조금 더 낮춘다

새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가까이 간다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아뿔사! 커다란 검정색 새는

순식간에 검정 비닐봉지로 변신해 잇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간 걸 후회하며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검정 비닐봉지가 다시 새로 돌아가기를 기다렸지만

변신은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다시 가 보고서야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검정 비닐봉지는 새가 되어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던 것이다











초승달

어떤 땐 안 좋아서 좋아

바로 어젯밤 같은 때

초승달 뜬 밤 말야

초승달 보러 나가면서

깜빡 안경을 놓고 나갔지 뭐니

그랬더니 글쎄

이쁜 초승달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자그마치

일곱 개나 떠 있더라니까

눈을 가늘게 오므리면 초승달은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로 줄었다가

다시 두 개가 되고 다섯 개가 되고

세 개 때가 가장 멋졌어

황금 날개를 가진 새가

황금 몸통을 빛내며 날고 있었거든

그 옆에서 별들은 팡팡

폭죽을 터뜨리고

얼마나 환상적이었나 몰라

너도 한번 보고 싶지?

그런데 어쩌니?

너는 눈이 좋잖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네 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을 썼다.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이며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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