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 남은우 동시들

동시

by 보리


친구


우리 할머니 지네가 놀러 오면

거실과 부엌에서 실컷 놀게 하다가

닥나무 울타리에 넣어 준다


그러면 지네는

한나절을 못 참고 또 놀러 와

제발제발 말을 건다


할머닌 혼자 사는 거 안 무서워?

언제 할아버지 생각 제일 많이 나?

앵두가 익었던데 맛봤어?

다음 장날에 내 운동화 꼭 사 올 거지?


비 오는 날은 사이가 더 좋아

감자 삶아 먹고

수제비 끓여 먹고

저녁까지 있다 가기도 한다











팽나무


팽 토라지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팽 코라도 풀어야 답답하지 않지


팽 돌고 싶은 마음 팽이만 알지


팽 무슨 시간이 이리도 빨라


팽 300년이 순식간이야


팽 강물은 왜 이리 푸른 거야


팽 눈물이 도네








강아지 기차


복숭아 상자에 담긴

강아지 네 마리

잠만 잡니다


첫째형아엉덩이에둘째얼굴둘째형아엉덩이에셋째얼굴셋째형아엉덩이에막내얼굴


“형한테 꼭 붙어!”

“응, 형아.”


그러면서 만들었을 기차


눈뜨면 기차에서 내려야 할까 봐

감은 눈 뜰 줄 모릅니다






감자밭


낮은 가장 긴 날 하지잖아유

두꺼비 지 좀 돌아다닐게유

검정 비닐 쓰고 죽는 줄 알았구만유

감자 애들은 못생긴 게 꺼져, 놀아 주지도 않지유

지가 또 한 뿔 내잖아유

자주감자 집 외동아들을 확 떠받고 나왔지유

감자밭을 벗어나니 숨이 좀 쉬어지네유

뻐꾸기도 울고 참 좋네유

달팽이가 왜 세상 구경 다니는지 알겠어유

휴, 해바라기 동네 옛집까진 한참을 더 가야 해유

어기적어기적 걸음이 눈에 좀 거슬려도 봐주셔유

돌 아니구유

우툴두툴 저 같은 개구리도 있어야지유

독을 뿜어야 건널 수 있는 세상이라기에

독 한 주머니도 찼구먼유








우산이 뛴다


태풍이 섬 끝 마을 지붕들 발랑발랑 뒤집고 있을 시간

우산도 급하다


달맞이꽃 노란 대문들 잘 붙들어 맸는지

모래톱에 놀던 백로 아이들 대숲 집에 돌아갔는지

링거가 주렁주렁 달렸던 팽나무 할머니는 무사한지


삼킬 것 찾아

우우웅 곰 울음 퍼지르는 태풍에게서

강 지켜 내려고


뛴다, 손잡이 하나로 남게 되더라도






경주 관문성 성저마을에서 자랐다. 문예창작 공부를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가 태화강변에 회귀, 책방을 오래 운영했다.
200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2013년 제11회 푸른문학상 동시부문 수상, 같은 해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가 추천 완료되었다.
동시집으로 『화성에 놀러 와』 『콩알 밤이 스물세 개』 『강아지 학교 필독서』가 있다.
울산문화재단 예술 강사로 뛰며 동시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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