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김유진 동시들

동시

by 보리


콩 한 쪽


쪽진 할머니가

쪽물 들인 치마 입고

쪽마루를 지나

쪽문을 나서

쪽빛 하늘 아래

마실을 가다

길 한 쪽에 떨어진

콩 한 쪽을 보고

콩 한 쪽이 어디냐

하늘에서 떨어지나

땅에서 절로 솟나

얼씨구나 얼른 주워

입맞추네 쪽!









고드름


아침 햇살 비친

지붕 아래

촘 촘 촘


겨울밤이

두고 간

얼음 빗












나는 보라


너는 빨강이니 파랑이니

너는 빨강도 파랑도 아니구나


빨강과 파랑의 세계에서

나는 보라


빨강들 옆에선 파랑에 가깝고

파랑들 옆에선 빨강처럼 튀는


나는 보라


빨강과 손잡으면 빨강보라

파랑과 팔짱 끼면 파랑보라


빨강빨강보라였다가 빨강보라였다가

파랑보라였다가 파랑파랑보라였대도


보라는 보라


빨강 옆에서 빨강을 알게 하고

파랑 옆에서 파랑을 보여주며


빨강과 파랑을 만드는


보라










산마을 푹푹 눈이 내리면


뒷산 자작나무 밑동에

반나마 허문 담장 위에

밤새 추웠던 털신 안에

푹신푹신 의자가 생겼어요


하얀 의자 사라질 때까진


온 마을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꽃의 순서


어서 피어라

어서 피어라


간절한 외침 들려요

겨우내 기다린 거 알아요


이 동네 여러 봄을

다 봤으면서 그래요


햇볕 환히 드는 마당 목련이

그늘 자리 매화보다 먼저 태어나고

큰길가 벚꽃 하얗게 웃어도

담벼락 아래 벚나무는 아직인걸


꽃에도 꽃의 순서가 있는걸요


한동네 같은 이름 나무라도 순서는 달라

땅이 얼마나 따뜻한가 조심히 발 디뎌보며


꽃 필 날은 내가 정해요


언제든 어김없이 피어요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2009)과 평론 부문(2012)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집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 그림책 『오늘아, 안녕』 등을 냈습니다. 2018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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