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김개미 동시들

동시

by 보리

티나는요,


티나는요,

태어나기 전부터

한국에 살았대요

한국말은 배운 적도 없는데 잘하고

태권도는 배운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일 년 넘은 애처럼 날아다닌대요

아프리카엔 가 본 적도 없는데

전설 속의 아프리카 사냥꾼처럼

달리기를 잘 하고

쏴본 적은 없지만

활도 잘 쏜대요

나는요

티나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요

귀가 자꾸 커져요





눈은 참


눈은 참 끈질겨

길고 긴 전깃줄도

얽히고설킨 등나무 덩굴도

끝까지 따라가 앉아


눈은 참 꼼꼼해

배드민턴 그물 한 칸도

회양목 이파리 한 장도

빼먹는 법이 없어







벌레가 되면


벌레가 되면

돌 밑에 숨지 말고

민들레 밑에 숨어야지


나비가 오면

조금 기어 나와

날개를 구경해야지


벌이 오면

대궁을 껴안고

진동을 느껴야지


나 같은 아이가 오면

예쁘다는 말을

잔뜩 들어야지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


어쩌면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졸지 모른다

졸지만 우리가 모르는 건지 모른다


우리 선생님은

10년도 넘게 선생님 했으니까

졸면서도 눈 안 감을지 모른다


졸면서도 말하고

졸면서도 걸어 다니고

졸면서도 우리한테 졸지 말라 그럴지 모른다


우리 선생님은 진짜

못하는 게 없으니까

졸면서도 우리를 잘 가르칠지 모른다





엄마 생일을 까먹자


작년에 엄마가

내 생일을 까먹어서

복수를 다짐했어요.


며칠에 한 번씩

달력을 들춰보면서

복수를 다짐했어요.


아, 너무 열심히 다짐했나 봐요.

드디어 내일이 엄마 생일인데

잠을 못 자겠어요.


까먹어야 해…….

까먹어야 해…….

까먹어야 해…….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 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 동시집 <어이없는 놈>, <커다란 빵 생각>,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그림책 <사자책>, <나의 숲>, 시그림집 <나와 친구들과 우리들의 비밀 이야기>를 냈습니다.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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