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치는 날
비가 와서 일도 없고
모여서 수다나 떨자
날씨 탓으로 일을 못하는 직업이 있지요.
어렸을 때 동네 아저씨들은 아침부터 비가 오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치는 날이라고 돈 벌러 가려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아쉬워하는 낯빛이 아니었거든요.
적어도 어린 제 눈에는 그리 비쳤습니다.
비슷한 처지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화투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집저집 전 굽는 냄새가 납니다.
대낮부터 한잔 걸친 아저씨는 불콰해진 얼굴로 노랫가락을 뽑습니다.
어쩌면 입에 단내나게 일하다가 비 핑계로 어쩔 수 없이 쉬는 거겠지요.
쉼표 같은 날이었을까요.
부슬부슬 봄비가 오는 걸 보던 고3 아들이 '엄마, 비오는데 학교 가야해요?' 농을 던집니다.
가벼이 무시하고 입에 사과를 물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