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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동시해- 박승우 동시들(2)

동시

by 보리

달력의 날짜

난 너희들이
맘대로 빼먹을 수 있는
곶감이 아니야

하루에 하나씩
차례대로 빼먹어야 해

달콤하지만도 않아
씁쓸하거나 외로운 맛일 수도 있어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날마다 맛이 달라

알았으면 잘 요리해!











풋사과는 얼굴에 붙은
풋을 떼어 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한다

가을이 되어서야
풋을 떼어 내고
붉은 얼굴이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

비 오는 날
비를 빼면 흐린 날이 되지

흐린 날
구름을 빼면 맑은 날이 되지

맑은 날
해를 빼면 깜깜한 날이 되지

깜깜한 날은
뺄 게 없어 별을 하나씩 더하지

총 총
총 총 총 총 총
총 총 총총 총

별이 빛나는 밤이 되지









플라스틱의 결심

플라스틱이
떠돌아다니다가 돌을 만났다

플라스틱이 말했다
우린 둘 다 쉽게 썩지 않으니 친구하자
수백 년 함께 보낼 수 있을 거야

돌이 말했다
난 자연물인데 넌 인공물이잖아
난 인공물과는 친구 되기 싫어

플라스틱이 결심했다
나를 만든 사람에게 돌아갈 테야
만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니까

버려진 플라스틱이
사람에게 돌아오고 있다









사이다

사이다는 병 속에 갇혀 있자니
속이 부글거렸지만 참기로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행을 했다

어느 날
뚜껑이 뻥, 열리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사이다다!

시원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경북 군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푸른문학상, 오늘의 동시문학상, 김장생문학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집으로 『백 점 맞은 연못』 『생각하는 감자』 『말 숙제 글 숙제』 『나무동네 비상벨』 『힘내라 달팽이』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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