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큰아빠 경운기
우리 아빠 트럭
고모네 자동차
막내 삼촌 오토바이
텅 비었던
시골 마당에
자동차들이 열렸다
줄기에
감자 알 열리듯이
골목까지
주렁주렁
할머니가 키운
알감자들
달빛을 받아 반짝,
마당이 환하다.
꿀병
저 안에
얼마나 많은 꽃들이
모여있을까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벌들의 날갯짓이
들어있을까
아까시 꿀
작은 병 안에
초여름 산 하나가
들앉아 있다
수세미꽃
하늘도 깨끗
골목도 깨끗
바람도 깨끗한데
대체
뭘 또 닦으려고
담장 위에 앉았니
첫 손님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손님이 오면
어른이 되는 거래.
할머니도 엄마도
옆집 이모도
다 그렇게 어른이 된 거래.
조금은 떨리고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낯선,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걸까.
도란도란
엄마와 나눈 이야기
선홍빛 꽃으로 피는 밤
어디쯤 사뿐, 오고 있을까
나의 첫 손님.
덩굴장미
수많은 의병 끌고
담장을 넘어와
칼도 없이
화살도 없이
학교 가는 아이들 시선 꺾고
출근하는 아가씨 시선 꺾고
청소차 아저씨 시선도 꺾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
모조리 꺾어놓고
음하하하!
빨갛게 웃는 홍의 장군
우리 집을 점령한
의병 무리가
낮은 포복으로 옆집 담장을
넘어가고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은 구미시에서 치과위생사로 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2015년에 창주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2018년에는 황금펜아동문학상과 천강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동시문학회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계몽아동문학회, 구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