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감자는 잠꾸러기다
흙 속에 묻힌 걸
캐내도 안 깬다
숟갈로 껍데기를
벗겨도 안 깬다
삶아 먹어도 잠만 잔다
옥수수
옥수수네 엄마는
좋은 엄마지
뙤약볕이 따가워
꽁꽁 싸 업고
칭얼칭얼 한종일
자장 불러요
옥수수네 엄마는
가난한 엄마
소낙비가 뿌려도
우산이 없어
치마폭만 가리고
걱정하셔요
우물
골목길에 우물이
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
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
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
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못 보게
돌이도 못 보게
우물은 밤새도록
물만 만든다
나만 알래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누더기 속 샤쓰
그게 아니야
나만 알고 있을래
아침에
엄마가 가만히 이르신 말씀
‘밀린 학급비 좀 더 기대려.’
그것도 아니지
나만 알고픈 것
날마다 모퉁이 가겟집서
침을 꼴딱 삼키게 하는
눈깔사탕
아니 아니 것도 아니야
나만 알래
나만 알래
성구하고 말다툼할 때
글쎄
난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무섭게 부릅뜬
성구 아버지 얼굴
나만 알래
돌아가신 아빠 얼굴은
그렇진 않겠지
그렇진 않겠지......
방물장수 할머니
방물장수 할매가
엉덩이 빼딱빼딱 오신다
요롱 달린
사립짝집 들여다보고
“동백기름 사이소?”
“안 사니덩”
그러니깐 이내
빼딱빼딱 가신다
돌담 너머 집
넘겨다보고
“상침 바늘 사이소?”
“안 사니덩”
우물 안집
들여다 보고
“참빗 안 사니껑?”
“안 사니덩”
저어런?
아무도 안 사네
할매가 불쌍해진다
해질녘에
동리 어굿길에 선
내 눈이 뗑굴?
저먼치 가시는
할매 등어리에
묵직한 곡식 자루가 얹혀
빼딱빼딱
가신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에 살면서 『몽실 언니』를 썼다. 가난 때문에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1973년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사과나무 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몽실 언니』, 『먹구렁이 기차』, 『깜둥 바가지 아줌마』 등 많은 어린이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