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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Jun 19. 2023

동시에 동시해 - 문봄 동시들

동시

마른 멸치의 부활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슬며시 눈을 뜬 마른 멸치가

뻑뻑한 지느러미를 부르르 펴요

입을 벌려 굳은 혀를 돌려요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작은 이빨을 맞부딪쳐요

-딱 딱 딱 따다닥 딱


가스레인지 위에 물이 파르르 끓을수록

마른 멸치는 온몸이 새로 태어나요

아가미를 착 벌리고

꼬리 끝까지 힘을 주어

냄비 속 다시마 사이를 헤엄쳐요

바다를 누빌 때처럼 냄비를 누비죠     










    

야옹! 


우리 집 기계들은 일요일에도 쉴 줄 몰라

소파에서 감자처럼 눠 있는 삼촌만 보는 티비

자수 게임 등급 올리느라 거북목이 된 컴퓨터

지우 만화 그리느라 손이 바쁜 태블릿

집사와 함께 막춤에 빠진 블루투스 이어폰

배달 앱 쿠폰으로 치킨 주문하는 스마트폰


기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사람들 좀 봐!

이젠 인간이 기계의 반려동물 아니냐.


야옹!      










   

보란 듯이 아름다운 


이 학교를 짓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장애 학생 엄마들은 오롯이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네

하마터면 못 지어질 뻔하다

마침내 지어진, 특별한 학교


이 학교를 짓고 나니

복도와 정원이 차원이 달라

남다른 학생들도 어엿이

학교 가는 길이 가까워졌네

무릎으로 흘린 눈물이 주춧돌이 되어

보란 듯이 아름다운 서진학교*


*서진학교: 2020년 개교하는데 7년이 걸린 ‘서울서진학교’         











먹통 


주인님 주머니에서 떨어짐시로

한 바쿠 휭 돌아부렀당께

액정이 깨져 부러서 앞이 컴컴해야

이래 봬도 나가 최신폰인디

귀가 멍멍해 븡께 암것도 안 들려야

입이 얼얼해 븡께 말문이 맥혀븐다야

오메, 어째야 쓰까이!

바닥에 눠 있을랑께 더수기* 욱신욱신해 부러

써비스센타로 언능 가 봐야제

아따, 주인님은 어디로 갔으까이?

해 떨어지기 전에 날 찾을란가.


*더수기: 뒷덜미         


와글와글 알파벳 


I

-내가 파르테논 신전 기둥이었잖아.


A

-아이, 너 지금 에펠탑 앞에서 뭔 소리야?


C

-에이, 가장 높은 데서 빛나는 조각달 안 보여?


O

-씨이, 아까까지 떠 있던 태양이 바로 난데......


Q

-오우, 달걀 노른자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해.    







   

2019년 [어린이와 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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