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멸치의 부활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슬며시 눈을 뜬 마른 멸치가
뻑뻑한 지느러미를 부르르 펴요
입을 벌려 굳은 혀를 돌려요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작은 이빨을 맞부딪쳐요
-딱 딱 딱 따다닥 딱
가스레인지 위에 물이 파르르 끓을수록
마른 멸치는 온몸이 새로 태어나요
아가미를 착 벌리고
꼬리 끝까지 힘을 주어
냄비 속 다시마 사이를 헤엄쳐요
바다를 누빌 때처럼 냄비를 누비죠
야옹!
우리 집 기계들은 일요일에도 쉴 줄 몰라
소파에서 감자처럼 눠 있는 삼촌만 보는 티비
자수 게임 등급 올리느라 거북목이 된 컴퓨터
지우 만화 그리느라 손이 바쁜 태블릿
집사와 함께 막춤에 빠진 블루투스 이어폰
배달 앱 쿠폰으로 치킨 주문하는 스마트폰
기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사람들 좀 봐!
이젠 인간이 기계의 반려동물 아니냐.
야옹!
보란 듯이 아름다운
이 학교를 짓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장애 학생 엄마들은 오롯이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네
하마터면 못 지어질 뻔하다
마침내 지어진, 특별한 학교
이 학교를 짓고 나니
복도와 정원이 차원이 달라
남다른 학생들도 어엿이
학교 가는 길이 가까워졌네
무릎으로 흘린 눈물이 주춧돌이 되어
보란 듯이 아름다운 서진학교*
*서진학교: 2020년 개교하는데 7년이 걸린 ‘서울서진학교’
먹통
주인님 주머니에서 떨어짐시로
한 바쿠 휭 돌아부렀당께
액정이 깨져 부러서 앞이 컴컴해야
이래 봬도 나가 최신폰인디
귀가 멍멍해 븡께 암것도 안 들려야
입이 얼얼해 븡께 말문이 맥혀븐다야
오메, 어째야 쓰까이!
바닥에 눠 있을랑께 더수기* 욱신욱신해 부러
써비스센타로 언능 가 봐야제
아따, 주인님은 어디로 갔으까이?
해 떨어지기 전에 날 찾을란가.
*더수기: 뒷덜미
와글와글 알파벳
I
-내가 파르테논 신전 기둥이었잖아.
A
-아이, 너 지금 에펠탑 앞에서 뭔 소리야?
C
-에이, 가장 높은 데서 빛나는 조각달 안 보여?
O
-씨이, 아까까지 떠 있던 태양이 바로 난데......
Q
-오우, 달걀 노른자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해.
2019년 [어린이와 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