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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Jul 04. 2023

동시에 동시해 - '이름'  동시들

동시


이름 꺼내기/황점태
 
승연아?
걔 있잖아 1학년 때 네 짝꿍 잠깐 했던 애
머리를 자주 땋아 오고 눈이 동그란 애
“수빈이!”
아니 걔 말고
키가 좀 크고 수학을 잘 해서 선생님께 자주 칭찬 받았어
우리가 좀 부러워했잖아
“서은이!”
아니 서은이는 4반이었고
안경 안 끼고 분홍색 책가방에 애착 인형을 달고 다녔던 애
2학년까지 우리 반이었잖아
“아 민서!”
아니아니 민서 말고
우리 아파트 살다가 2단지로 이사 갔어 땋은 머리를 동생이 자꾸 잡아당기며 장난친다고 신경질 난다던 애. 새우 알레르기 있어서 급식 먹을 때 새우만 골라 식판 모서리에 올려놓던 애. 노래 잘 부르고 춤도 잘 춰서 꿈이 아이돌이라던 그 애, 그 애 이름이
 
뭐지!
뭐지!
아,
뭐지!
 
“근데 걔가 왜?”
 
 
 
 
 
 
 
 
 
기러기/최승호
 

기러기

 
기러기 떼 간다
기럭 기럭
제 이름 부르며 간다
 

기러기

 
 
 
 
 
 
 
 
 
 
 
 
 
 
 
이름표/윤제림
 
나무들은 일 년에 두 번 이름표를 답니다
 
한 번은 꽃이 필 때
 
사람들 모두 알은체하면서 꽃가지 사이로
사진 한 장씩들 찍고 가지만
나무 이름은 곧 잊어버립니다
 
또 한 번은 열매를 매달 때
 
사람들 모두 알은체하면서 열매 하나씩
따 가면서 즐거워하지만
나무 이름은 곧 잊어버립니다
 
나무들은 일 년에 두 번 이름표를 답니다
 
 
 
 
 
 
 
 
 
 
 
 
거미/이안
 
아빠가 출생 신고서에
내 이름을 쓰면서
줄 하나를 빠뜨렸어
 
거미로 살고 있지만
실은 나 개미야
 
이런 나한테
줄도 못 치는 거미라고
정말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는 게 말이 되니
 
개미한테 말이야
 
 
 
 
 
 
 
 
 
꽃의 순서/김유진
 
어서 피어라
어서 피어라
 
간절한 외침 들려요
겨우내 기다린 거 알아요
 
이 동네 여러 봄을
다 봤으면서 그래요
 
햇볕 환히 드는 마당 목련이
그늘 자리 매화보다 먼저 태어나고
큰길가 벚꽃 하얗게 웃어도
담벼락 아래 벚나무는 아직인걸
 
꽃에는 꽃의 순서가 있는걸요
 
한동네 같은 이름 나무라도 순서는 달라
땅이 얼마나 따뜻한가 조심히 발 디뎌보며
 
꽃 필 날은 내가 정해요
 
언제든 어김없이 피어요
 
 
 
 
 
 
 
 
 
가시/박성우
 
요건 찔레고 조건 아카시아야.
잘 봐, 꽃은 예쁘지만 가시가 있지?
 
아빠 근데, 찔레랑 아카시아는
이름에도 가시가 있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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