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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Jul 10. 2023

동시에 동시해 - 정광덕 동시들

동시

화장실 화분


오늘 학교에 갔더니

화장실 세면대 한쪽에

화분이 놓여 있더라.


매일매일 보면서

칭찬해 주라는 메모와 함께.


칭찬을 해 주는 건 좋은데,

화분은 어떨지 몰라?


교실 창가도 아니고

냄새나는 화장실이라니.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화분의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고?


 


 


어르신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우리랑 함께 산다.


외할머니가

어르신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


외할머니를 태우고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차를 보며

엄마가 눈물을 훔쳤다.


-엄마 왜 울어?

-글쎄 그냥 눈물이 나네.


-내가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도 그랬어?

-그랬지. 오늘이 꼭 그날 같네.


나는 엄마를 꼭 안아 주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안아 주듯그렇게.


 


 


 


삼일절


새싹이

몰려나와


초록

깃발

흔드는 건


그날의

외침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


빼앗긴

봄을 찾으러


흔들던

태극기 물결.


 


 


 


 

 


목련꽃이 피면


마을 회관 앞마당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작년 봄에도

재작년 봄에도

그랬던 것처럼


목련나무는

이른 봄이면

잎보다 먼저 꽃봉오리를 만들고

처음 하는 일인 양 조심스럽게

여섯 장의 꽃잎을

살살 풀어 놓습니다.


목련꽃이 피면,

마을 회관 앞을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눈길을 줍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삼스럽게.


 


 


 


때깔 고운 돼지


먹이만 찾는다고

뭐라 하지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겠죠.

이런 속담 모르세요?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잖아요.


 


 


2022년 상반기,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작품 -


 


 


2012년 《아동문예문학상》 동시 당선으로 등단. 동시집 [맑은 날]을 펴냈으며, 2021년 올해의 좋은 동시집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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