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미장원
바닷가에 미장원을 차린
꽃게 아가씨
찰랑거리는 머릿결 대신
찰랑거리는 물결을 잘라 주지요
그곳이 미장원인 줄 모르고
잘못 들어온 문어 아저씨
자긴 깎을 머리카락도 없다며
연신 투덜댔지요
슬슬
심술이 난 문어 아저씨
미장원을 찾은 손님들에게 찍,
염색약을 흩뿌렸지요
쏴아
쏴아
머리 감겨 주는 파도 아가씨만
하루 종일 바빴지요
춤추는 미역
미역은 바다의 춤꾼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지
어물전마다 잡혀 온 미역들
하얗게 질린 채
다들 차렷하고 있지만
물만 닿았다 하면
가만 있질 못하지
저 봐
뜨거운 냄비 속에서도
가만 있질 못한다니까
얼마나 신이 났으면 뚜껑이 다
들썩이겠어
깨
은행 털면
잡혀 가고
사람 털면
먼지 나고
우릴 털면
깨가 쏟아집니다
세상이
고소해집니다
마늘의 외침
밭에 살던 나를
베란다 구석에
매달아 놓더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잊어버린 걸까
하루하루 사는 게
푸석,
푸석,
푸석,
베란다 문이 열릴 때마다
촉촉해지는 달팽이관
오늘은 나 여기 있다고
나 아직 살아 있다고
초록색 발가락 하나
쑥,
내밀어 본다
만지면?
보물이라고 불리는
값비싼 도자기들은
음식을 담지 않는다
눈으로 보기만 한다
만지면?
큰일 난다!
-2022년 상반기,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작품 -
1971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습니다. 2014년 한국안데르센 동시 부문에서 〈엄마〉라는 동시로 상을 받고,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후 첫 동시집 《머리 깎는 날》을 출간했습니다. 2018년 〈살아 있는 우리말〉로 아르코문학창작 기금을 받고 2020년 두 번째 동시집 《살아 있는 우리말》을 출간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성공한다》 자기 계발서 1권 발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