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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Aug 21. 2023

동시에 동시해 - 김규학 동시들

동시

손도 까딱하지 않았는데


화장대를 잡고

처음으로 아기가 섰다.


화장대 위에 있던

향수

립스틱

스킨로션이


아기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라간다.


일어서기만 했는데

화장품이 착착

올라가는 것은


아기의 힘이다.

아기의 초능력이다.


 


 


 


다음 시험 때문에


시험 치고 나오는 순간

공부했던 거

다 잊어 먹었다는

대학생 삼촌


-어차피 잊어 먹을 건데

공부는 왜 해?

-시험 쳐야 하니까


-까맣게 잊어 먹을 건데

시험은 왜 자꾸 쳐?


-말끔하게 비워야

새로운 거 또 공부하지!


 


 


 


 


텃밭 풍경


아기 하나씩 업은

옥수수가


참관수업 온 엄마들처럼

빙 둘러 서 있다.


고춧대야

가지 대야

바람이 살랑살랑 꼬드겨도

못 들은 척 있어라.


돌아다니고 싶어

좀이 쓰시겠지만


고구마 덤불 너도

얌전하게 있어라.


 


 


사과를 깎기 전에


칼등으로

엄마가


사과 어깻죽지를

탁탁 친다.


주사 놓기 전에

간호사 언니가


내 엉덩이

찰싹찰싹 때리듯


 


 


 


전기톱과 나무


나무를 자르면서

전기톱이 운다.


쓰러지면서도

나무는

울지 않는데


전기톱 저만

소리소리 치며 운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나무

그루터기에도


그렁그렁

눈물방울 맺힌다.


 


 


 


 


-아르코창작기금 발표지원작 -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2009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2010년 천강문학상 수상하며 작품 활동 ▷불교신인문학상 수상, 황금펜아동문학상 수상 ▷동시집 '털실뭉치', '방귀 뀌기 좋은 계절', '서로가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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