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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Sep 18. 2023

동시에 동시해 -조영수 동시들

동시

뛰어


옥수수를 갉아 먹다

물린 고라니가 절뚝이며 뛰어

그 뒤를 금동이가 컹컹컹 쫓으며 뛰어

나리가 금동아 이제 그만해 소리치며 뛰어

고라니가 강을 가로질러 뛰어

그 뒤를 소나기가 작고 하얀 발로 토도독 뛰어

금동이가 멈칫하더니 나리를 향해 뛰어

나리와 금동이가 집으로 뛰어

고라니가 휙, 돌아보더니 산의 품으로 뛰어

휴, 내 심장이 가만있지 못하고 콩닥콩닥 뛰어


 


 


 


 


 


보름달 사람


지하철 안

사람들로 빼곡한데


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초승달만 한 틈을 만들자

보름달처럼 자란다


둥글고 환한 자리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들어선다

보름달 속의 한 사람이다.


 


 


 




움직이는 화살표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옵니다

화살표를 그리며 날아옵니다


시베리아 두꺼운 추위는 두고

철원평야의 얇은 추위 찾아오는

움직이는 화살표들


발 얼지 않고

겨울 밥상 차릴 곳을 가리키는

화살표들이 날아옵니다.


 


 

 


 


 


1959년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2000년 《자유문학》에 시,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행복하세요?』와 동시집 『나비의 지도』 『마술』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3회 받았으며 오늘의 동시문학상,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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